特 輯 : 역사교육 연구의 성찰과 새로운 모색
宋相憲, 역사교육에서 역사 인식 과정이 구현된 역사 텍스트 구성 문제
1. 머리말
2. 역사 텍스트 구성 방향
3. 역사 텍스트 구성의 기초 개념
4. 역사 텍스트의 구성 방안과 역사교육적 의미
5. 맺음말
역사 인식의 과정이 구현된 역사 텍스트의 구성 방안을 논의해 보았다. 역사교육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실재론의 입장에서 패스모어의 사건의 경로(courses of events) 개념과 허구론의 입장에서 화이트의 플롯부여(emplotment) 개념을 참고하여 역사 텍스트의 구성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들 개념을 활용하여 역사 인식의 과정을 구현한 역사 텍스트는 주어진 시간의 범위 속에서 일관되게 역사 흐름을 추적할 수 있게 체계화된 역사 설명으로 이루어진다. 독자는 이런 텍스트를 통하여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별 사실이 갖는 역사의 의미를 터득할 수 있다. 체계화된 역사 텍스트는 역사 인식 과정의 구현물이어서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
역사 인식 과정이 구현된 역사 텍스트는 역사가의 통찰력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 텍스트를 도입하게 되면 쏟아지는 역사 정보를 스스로 걸러내고 분류하여 자신의 역사 인식으로 역사 지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그것은 학생이나 독자를 주체적인 인식자로서 인정한 후에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생이나 독자에게 스스로 역사를 인식하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역사 텍스트라고 믿는다. 그것은 교과서도 아니고 대안교과서도 아닌 체계화된 역사 텍스트이다. 체계화된 역사의 요구자요 수요자이며 공급자인 교사와 시대나 관심 주제의 범위를 확장한 역사가의 분발이 요구된다. 현장과 학계는 전 시대, 혹은 한 시대 전체를 대상으로 역사의 흐름을 저자의 통찰력으로 일관되게 정리한 역사텍스트를 생산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安貞愛, 내러티브 교재와 역사 학습
1. 머리말
2. 교과서 서술과 내러티브
3. 내러티브 교재의 서술
4. 역사 학습에의 활용
5. 맺음말
역사 교재의 내용이 어떠한 표현 방식을 취하는가에 따라 역사적 사실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결정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역사 인식에 큰 영향을 끼친다. 왜냐 하면 독자가 읽는 내용은 텍스트로 표현된 의미이기 때문이다.
화자(역사가)의 목소리가 드러나고 역사 사실을 구체적이고 비유적으로 묘사하며 인간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내러티브 교재는 교과서를 읽은 경우보다 더 긴 역사 이야기를 서술하게 했다. 학생들의 글에 대한 질적 분석에서 나타난 내러티브 교재의 효과는 학생들의 의식에서의 변화와 관련된다. 내러티브 교재는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 사건의 동기와 의미 등을 주목하게 하고 현재의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의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본 연구자가 개발한 내러티브 교재는 그것이 가장 내러티브적인 서술 형태라고 하기 어려우며, 또 현대의 신문화사가들이 취하고 있는 서술의 형태와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사실 신문화사가들의 서술 방식 또한 각각의 학문적 배경에 따라 상이한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연구자의 교재 개발을 제약한 것은 현행 중등학교의 역사 교육 과정과 교과서의 내용 구성 체제였다. 그러나 내러티브 교재를 실제로 교육 현장에 광범위하게 적용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반면, 역사학과 역사 교육에 대한 연구를 촉진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내포한다. 역사 교육의 측면에서도 학생들을 위한 역사 교재의 구성에 어떤 내러티브를 표현할 것인지, 내러티브간의 합의와 불일치의 정도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요청될 것이 분명하다.
金玟政, 역사 교사의 현장연구 방법론 모색 ― 실행연구를 중심으로 ―
1. 머리말
2. 역사 교사와 역사교육 연구
3. 역사 교사와 실행연구
4. 역사 교사에 의한 실행연구의 의의
5. 맺음말
역사를 잘 가르치고 배우기 위해서는 교사의 전문성 확보와 함께 학생들의 역사 이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역사교사들이 역사교육학 이론에서 기대하는바 역시 다르지 않다. 이 연구에서는 설득력 있는 역사교육 이론을 위해, 역사교육 연구자와 교사의 분리를 불식시키는 의미에서 ‘현장성’을 되돌아보고 교사들에 의한 실행연구를 살펴보았다. 역사교사의 실행연구는 연구자와 교사를 분리하지 않고, 교사의 현장연구를 장려함으로써 역사교육 연구공동체 일원으로 참여하고 그 결과 역사교육 연구의 저변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그리고 역사 교사를 연구의 중심체로 세우며 교수행위에 대한 반성적 모델을 통해 교수활동을 진전시키고, 그러한 연구의 축적으로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이론적 바탕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연구방법에 대한 소개나 훈련이 교사교육과 재교육을 통틀어 부재한 상황에서 교사에 의한 연구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따라서 실행연구의 가능성에 주목하여 이러한 연구방법론을 실습해볼 수 있는 장으로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에서 예비교사들을 위한 연구방법론 수업을 개설하고, 교사 재교육 기간에도 내용이나 교수 기능에 대한 세미나 외에 이러한 연구방법론에 대한 소개와 적용이 필요하다.
역사교육 이론은 현장에 대한 ‘처방’일 수 없다. 이제까지의 이론이 처방적이었다면, 현장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아울러 현장적 이론의 생성은 현장에서 나와야 하고, 그것은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라 이론을 만들어나가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즉 역사가들이 과거에 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해석하여 역사 연구 저작을 발표하듯, 교사 역시 수업을 위해 역사적 내용을 재구성하고 직접 가르치는 수업 속에서 자신의 실행에 대해 의미부여하고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글은 그러한 시도 중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崔祥勳, 대학수학능력시험 역사영역 문항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1. 서 언
2. 역사영역 문항의 준거별 특징과 문제점
3. 사회탐구영역의 평가목표와 역사영역 문항의 문제점
4. 역사영역 문항의 개선방안
5. 결 어
본고에서는 14년간의 수능 기간을 제5차 교육과정 적용기(1994학년도~1998학년도), 제6차 교육과정 적용기(1999학년도~2004학년도), 제7차 교육과정 적용기(2005학년도 이후)라는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의 개괄적인 특징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14년간에 출제된 총 378문항의 역사문항을 연도순으로 정리하고, 소재, 분야, 지역 등의 준거별로 분류함으로써 각 시기의 특징을 살피고 문제점을 검토하였다. 이어서 사회탐구영역의 평가목표를 살펴보고 그 목표에 따라 역사영역의 문항을 분류하였으며 실제로 출제된 문항이 그러한 평가목표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역사영역 문항의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역사과에서는 수능이 실시된 지 14년이 경과하였지만 아직까지 그에 대한 공과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따라서 본고의 논의를 계기로 수능의 문제점에 대한 검토와 개선방안에 관한 모색작업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論文
金恩淑, 근대 일본의 역사교육과 고구려사, 발해사 인식
1. 머리말
2. 국정제 이전 역사 교과서의 고구려사, 발해사 서술
3. 국정교과서 시대(1903~1945)의 역사 교과서의 고구려사, 발해사 서술
4. 맺음말
근대 일본 교과서에 나오는 고구려와 일본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日本書紀>
의 내용을 기초로 한 것인데, 자유발행제 교과서에서 다양하게 등장하다가 국정교과서시대에는 고구려에 관한 서술이 신공황후의 삼국 복속이야기로 단순화되었다. 한국을 강제 병합하고 만주 지역에 대한 지배를 강화해가던 일본제국에게는 신공황후의 삼국 복속이야기가 일본이 200년경부터 한국과 남만주를 지배하였다는 주장에 가장 바람직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이 만주지역의 지배에 더 관심을 가지면서 제3기 국정 역사서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역을 그린 지도가 추가되었다.
모든 시기의 교과서에서 발해사에 대한 언급은 매우 소략하였으며, 국정교과서 시대에는 제6기에만 등장하였다. 발해의 영역은 한국북부와 만주, 연해주에 걸쳐 광대하였지만,
<續日本紀>
등의 일본 사서에 보이는 발해와 일본의 관계는 발해가 일본에 조공하는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발해는 당의 책봉을 받고 당에 조공을 하기도 하였으므로 자국 중심의 역사 교육에서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1940년대에 ‘大東亞共榮圈’이라고 하는 일본 중심의 지역권을 만주, 중국, 동남아시아에 만들고자 하면서 발해가 일본을 받들면서 친밀한 관계를 맺었음을 강조하는 서술이 제6기 국정교과서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에서 발해와 일본의 관계는 고대 東亞의 共榮을 상징하는 교재가 되었다. 이처럼 근대 일본의 역사교육에서 고구려와 발해는 일본이 제국주의적인 국민국가를 만들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변형되고 왜곡되었던 것이다.
金鍾洙, 백제 軍制의 성립과 정비
1. 머리말
2. 마한의 정치체제와 軍制
3. 백제 군제의 성립과 4부 체제
4. 중앙군·지방군의 분화와 정비
5. 맺음말
오늘날 삼국시기 군제사 연구는 만족할 만한 수준에 있지 못하다. 특히 신라와 고구려의 군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연구 성과가 있으나, 백제의 군제에 대해서는 사비시대의 군제를 다룬 논문 2편이 전부인 실정이다. 백제 전시기의 군제를 살필 수 있는 논문은 전혀 없는 형편이다.본 연구는
<삼국사기>
, 백제본기의 기사 자체를 인정하고 문제가 제기될 경우 그 이유를 따져보는 방식으로 백제의 군제를 살피고자 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관점에서
<삼국사기>
백제본기와
<삼국지>
한전 등을 분석하여 백제 군제의 성립 배경으로서 마한의 정치체제와 그 군제를 살펴보고, 이어 백제 군제의 성립과 4부 체제, 중앙군·지방군의 분화와 그 정비된 모습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로써 우리나라 고대와 중세초기 군제의 특징을 파악하고,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의 중세 군제의 성립과 정비 및 그 의의를 해명하고자 한다.
王元周, 1910년대 전반기 韓溪 李承熙의 中華사상과 民族인식
― 신해혁명에 대한 중국인 李文治와의 논쟁을 중심으로 ―
1. 서 론
2. 중국에서의 활동과 李文治와의 만남
3. 辛亥革命에 대한 李文治와의 논쟁
4. 결 론
본 논문에서는 위정척사운동과 국권회복운동에 적극 참여한 李承熙의 중화사상이 大韓帝國 멸망과 中華民國 건립을 전후하여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살피고자 한다. 중화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국민국가 건설과정과 세계질서 추구 사이에 존재하는 내재적인 연관성을 살펴봄으로써, 근대 동아시아 국가의 역사 변화에 있어서, 전통사상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李成宰, 프랑스 지방 도시의 빈민구제정책과 병원운영
― 12~17세기 모(Meaux)의 사례 ―
1. 서 론
2. 중세의 병원
3. 시립병원의 개혁
4. 종합병원의 창설
5. 결 론
본 논문에서는 우선 2장에서 16세기 이전 모의 구제체계의 양상을 시립병원, 생 라자르 나병원 그리고 장 로즈 병원의 창설과 운영과정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당시의 모의 주민들이 빈민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분석할 것이다. 이후 3장과 4장에서는 각각 16세기와 17세기의 병원 운영을 둘러싼 세속권력과 성직자들의 갈등을 구체적으로 고찰함으로써 파리가 모와 같은 근교의 소도시와 어떤 식으로 정치적 관계를 맺어왔는가를 확인하고자 한다.
鄭尙秀, 독일 함대정책과 해외함대 1898~1901년
1. 서 론
2. 독일 함대정책에 대한 논의구조
3. 티르피츠 계획
4. 독일 본국함대의 동아시아 파견과 철수
5. 결 론
본 논문의 목적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추진되었던 독일의 함대정책과 해군전략의 내용과 특징을 고찰하고 이것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에 있다. 독일 함대정책은 유럽의 파국을 초래했던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영국과 독일 사이의 해군을 중심으로 한 군비경쟁에 있다고 역사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이 판단하기 때문에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독일 해군정책에서 대내적 요인들보다는 외교적, 군사전략적 측면이 더 중요했다. 순양함 육성을 통해서 해외함대를 강화할 것인지 전함을 중심으로 한 본국함대를 육성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과 본국함대를 동아시아로 파견하고 철수하는 것을 결정하는 데는 국제정치적, 해군전략적 요인들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文 秀 鉉, 20세기 독일과 덴마크의 국경분쟁 문제
: ‘Up ewig ungedeelt’ vs. ‘Danmark til Ejderen’
1. 머리말
2. 독일과 덴마크 국경분쟁의 역사
3. 국민투표를 통한 국경선 정착
4. 소수민의 문제
5. 결 어
덴마크와 독일 간의 국경 문제가 생겨나게 되었던 역사적인 맥락을 개괄한 후, 다음으로 이 지역의 지리적 국경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기까지의 과정을 조망하고, 뒤이어 조정된 국경 양측에서 생겨나게 된 소수민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독일과 덴마크의 경험으로부터 분쟁 해결을 위한 일반적인 단초를 추론해 본다면, 먼저 지방의 자치권이나 개인의 선택권을 폭넓게 존중하는 것이 국경 분쟁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관건이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 언어적으로 혼종된 상태이던 이 지역의 현실을 도외시하는 방식의 국경조정, 그리고 그에 뒤이은 일방적인 덴마크화와 프로이센화는 모두 단명했고, 지역의 언어 경계를 반영한 국민 투표를 통한 국경 설정, 그리고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권을 존중하는 소수민 정책만이 항구적인 분쟁 해결방안으로 자리 잡을 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는 국경지역 주민들의 현실과 의지를 존중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의사를 적절히 통제하는 문제라는 점 역시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說 林
王先明, 중국 근대사회사 연구의 회고와 전망
1. 발전의 세 단계
2. 학술적 공헌
3. 장래의 전망
사회사는 198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중국근대사의 연구영역 안에 들어왔다. 그 후 20여 년 동안 사회사는 중국근대사의 연구방향에서 상대적으로 주류를 형성하였으며, 일정한 의미에서는 기존 중국근대사 연구의 기본구조를 바꾸어 놓았다. 따라서 중국 근대사회사 연구역정에 대한 회고와 반성은 우리가 “신시기” 중국근대사 연구의 발전추세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書 評
金七星, 장 이브 보리오 著, 박명숙 譯,
<로마의 역사>
, 궁리, 2007.
로마의>
삼국지>
삼국사기>
삼국사기>
續日本紀>
日本書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