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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敎育 117輯(2011.3.)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098
[論 文]
역사교사의 가르칠 궁리에 대한 반성과 공유:
역사수업연구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중심으로
金 玟 政
1. 머리말
2. 역사수업연구의 초점
3. 역사수업연구의 방향
4. 맺음말: 역사수업연구와 교사의 성장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역사교육에 관한 연구 성과가 축적·정리되고 있는 가운데 역사교육연구는 역사를 매개로 하여 일어나는 교육 현상 전반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통칭한다. 이와 같은 연구는 역사 학습을 설명하고, 그 특성을 이론화하며, 이를 바탕으로 역사 학습의 의미와 가치를 풍부하게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 연구는 특히 역사수업에 초점을 둔 연구들을 이론적으로 검토하여, 추후 역사수업연구 논의의 출발로 삼고자 한다. 역사수업연구는 교실 수업을 들여다보고 개선하려는 노력으로 한정시켜 보거나, 교실 수업을 둘러싼 제반 교육적 관심과 영향력을 살펴보는 좀 더 넓은 범주의 연구로 대별된다. 협의의 의미로서 역사수업연구는 역사교사의 핵심 활동이자 학생의 주요한 학습 활동이 일어나는 場으로서 역사수업(teaching)에 초점을 둔다. 이 때 교사의 중장기 수업 계획에서 시작하여, 내용 구성 및 자료 수집과 재구성을 거쳐 실제 수업을 실행한 뒤 실행의 결과를 반추하여 다음 차시를 계획하고 고안하는 일련의 과정이 역사수업연구의 초점이 된다. 연구자에 따라 역사수업의 특성이나 수업의 형태를 이해하고자 접근할 수도 있고, 수업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수업을 바라볼 수도 있다. 역사수업을 둘러싼 교육적 관심과 영향력에 대한 논의는 역사수업을 특징짓는 요소로서 교수·학습 자료, 교수법, 수업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역사교사의 내용지식, 교사의 신념과 관점, 교사의 성장과 변화, 교사교육 및 재교육(연수), 장학 등을 통한 교사의 수업전문성 신장 방안, 교원평가, 수업을 들여다보는 관점과 연구방법론에 대한 논의 등을 포괄한다. 1990년대 말 한국의 역사교육연구가 이룩한 이론적 성과를 검토할 때까지도 역사수업연구는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와 같은 연구의 흐름에 대해 현장에서는 “학습활동에 근거를 마련해 주는 이론적 배경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평가하였다. 역사교육이론에 대한 현장의 문제제기는 교사모임 단위에서 독자적인 역사교육이론을 마련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또한 최근 들어 교사는 수업을 왜 하는지, 자신의 수업 실행에 대해 반성적으로 보는 것이 왜 필요한지 등의 고민이 역사교사에게도 공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역사수업연구는 전통적인 역사수업에 대한 스케치부터, 교사의 역사인식과 수업 설계나 설명 사이의 연관성에 천착한 연구에 이르기까지, 수업을 포함한 확장된 형태의 교육 활동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역사수업에 대한 다양한 관심은 수업에 접근하는 방법이나 연구 문제에 따라 실증연구에 기반을 둔 접근, 교육 개혁에 대한 논의, 역사수업에 대한 개인 저작, 혁신적인 교육과정 구성안의 제안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역사수업에 접근하는 다양한 연구 문제와 연구 방법을 취하고 있는 실증연구 범주의 선행연구들을 중심으로 연구의 흐름을 개관하고자 한다. 역사수업연구는 역사(history), 수업(teaching), 연구(research)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만나는 지점이다. 즉 교사와 연구자가 역사, 수업, 연구에 대해 지닌 상이한 인식으로 인해 역사수업연구에 대한 논의가 복잡다단하게 펼쳐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수업연구의 성과는 해당 연구에서 상정하고 있는 ‘역사’, ‘좋은 수업’, ‘(학생의) 이해’에 대한 개념에 터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고에서는 역사-수업-연구를 분절적으로 보기보다, 역사교사의 교육적 의도를 파악한 상태에서 수업에서 일어나는 교수·학습 과정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역사수업연구에 접근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를 통해 교사가 가르칠 역사 내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어떻게 알고 있는가(역사), 교사의 역사지식은 학생을 가르치기 위한 지식으로 어떻게 변형되고 이때 나타나는 특징과 한계는 무엇인가(수업), 이와 같은 수업은 학생들에게 어떤 역사적 이해로 남을 것인가(학생의 이해), 나(교사)는 나(교사)의 수업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교사의 성장)와 같은 연구 문제에 천착한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역사수업연구에 관한 관점의 재정립은 기존의 역사수업연구를 검토하는 방향을 초점화하고, 논의의 토대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5학년 역사 내용 구성 방향
姜 鮮 珠
1. 머리말
2. 연구 내용
3. 연구 방법
4. 4, 5학년 학생이 흥미를 보이는 역사 내용의 범주
5. 초등 역사 내용 구성 방향
6. 맺음말

초등역사에서 교육과정과 교재의 내용 선정 및 구성의 원칙을 세우는 작업은 학생의 역사에 대한 흥미는 물론 이해 방식 등에 대한 경험적 연구의 축적을 요구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연구의 일환으로 한국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공식적으로 연대기적 역사에 접하기 전인 4, 5학년생이 흥미를 보이는 역사 내용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4, 5학년 학생은 대체로 갈등 구조를 지닌 사건에서 인간의 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 구체적인 인물이 역경을 극복한 ‘위대한’ 행위나 업적 또는 인간의 기초적인 감정에 호소하는 이야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 현재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과 다른 낯선 과거를 알 수 있는 내용 등에 흥미를 갖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학생들은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대체적으로 인물 개인의 자율적인 반응, 선택, 결정, 행위를 과장하고, 인물의 성품, 동기 등을 중심으로 인물이 내린 결정이나 행위를 설명하는 경향을 보였다. 요컨대 전반적으로 인물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역사적 맥락, 즉 인물의 행위가 상호작용하는 집단의 정치, 경제, 법 제도, 구조적 조건 등의 역할을 고려하지 못하고, 당시의 독특한 사회 문화적 신념과 규범 등이 인물의 행위와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도 거의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초등학생의 역사 교재는 초등학생의 독특한 역사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면서도 초등학생들에게 보이는 역사 구성 방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향에서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러시아 대학의 역사학 교재와 중등학교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한국전쟁 인식
奇 桂 亨
1. 머리말
2. 러시아 대학의 한국사 교재와 한국전쟁 원인에 대한 서술
3. 11학년 역사교과서의 한국전쟁 관련 서술내용 분석
4. 맺음말

굴곡과 단절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에 깊은 음영을 드리운 한국전쟁은 냉전체제가 사라진 현재에도 그 여파가 이어져,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구성원의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전쟁은 1950~1960년대의 ‘전통주의’, 1970년대의 ‘수정주의’, 1980년대의 ‘후기수정주의’,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신전통주의’ 또는 ‘신수정주의’ 해석 등 다양한 이론적 견해가 전개된 바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논쟁 중이다. 전쟁발발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더라도 그것은 분명해진다. 즉, ‘기원론(외적, 내적 기원)’과 ‘개전론(북침설, 남침설, 남침유도설)’으로 나뉘어, 한편에서는 전쟁이 공산주의 진영을 확대하려는 스탈린 책략의 하나로서 소련에 의해 미리 숙고되고 소련의 명령을 받았다는 주장을 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가까스로 동의를 구한 김일성이 주도한 전쟁으로 소련은 보조적 역할만을 수행한 것이 지적되기도 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1950년 5월에 이승만대통령이 전쟁준비를 한 상태에서 북한의 도발을 일으켰다는 입장에서부터, 전쟁발발 직전까지 거의 9개월 동안 38선을 사이에 두고 분계선을 따라 군대가 배치되고 계속해서 산발적인 소규모 전투가 일어나는 등 긴장감이 돌았던 점을 고려해 한국전쟁을 이러한 전투들의 연장선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논문은 그동안 전쟁발발의 원인, 과정, 결과 등을 둘러싼 수많은 사안들에 대해 새로운 사료를 제시하거나 새로운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러한 작업은 러시아 역사를 전공하는 필자의 능력 밖의 일이다. 이 논문은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에서 진행된 역사교육을 둘러싼 여러 논의들이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 및 서술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을 토대로 러시아의 한국전쟁 인식에 변화를 준 컨텍스트에 초점을 맞추어 한국전쟁 서술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 역사학계의 변화를 다룬 논문들이 다수 출간되었고, 한국교육개발원에서도 러시아 교과서의 한국 관련 서술에 관한 몇 차례의 세미나를 개최하였으며, 한러관계사 연구자들 가운데 러시아 교과서 관련 논문을 쓰는 등 적지 않은 축적이 이루어진 바 있다. 이 연구들은 소련 해체 이후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역사인식의 변화, 역사교육의 변화 등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러시아 역사학계가 직면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보여준다. 본 논문은 이러한 연구들이 지향하는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최근 러시아 역사교육의 현장에서 한국전쟁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살펴볼 것이다.


고등학교 국사 교수-학습에서의 고문서 사료학습
金 斗 憲
1. 머리말
2. 고문서의 정의와 효과 및 활용
3. 고문서의 교과서 수록 현황의 문제점과 대안
4. 고문서 사료학습의 실제
5. 맺는말

본고에서는 고등학교 2~3학년 국사 교수-학습에서의 고문서 사료 학습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에 대한 연구는 본고가 처음이다. 먼저 고문서가 사람(또는 官)과 사람(또는 官) 사이에서 수수된 오래된 문서라는 고문서 학계의 정의를 소개하였다. 이어서 고문서가 다른 자료에 비해 학습 자료로서 지닌 장점들을 살펴보았고, 조선시대 여러 분야를 학습하는데 적합한 학습 자료라는 사실도 제시하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다른 자료에 비해 고문서가 적게 실려 있으며, 기본적인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실려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하였고, 그에 따른 대안도 제시하였다. 학습 절차에 있어서는 고문서에 수록된 내용이 다른 자료에 비해 어렵기 때문에, 고문서 사료 학습 시 사료 선정과 비판은 교사가 설명하는 것으로 대체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학습 내용의 구성에 있어서는 사료 학습은 일년에 드물게 실시하므로,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의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하기 위해, 가능한 한 시간적, 통합적, 예외적, 비교사적, 학제적, 현재적 접근 방법을 사용하여, 학습 내용을 보다 체계적이고 심화된 내용으로 구성할 것을 권장하였다. 고문서의 학습 자료로서의 선정과 가공에 대해서는 먼저 고문서를 학습 자료로 선정할 경우, 어떠한 조건을 고려할 것인가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그리고 고문서를 학습 자료로 제시할 경우, 고문서의 난이도에 따라 고문서를 원본 그대로 제시하거나, 쉬운 용어로 풀어서 간략하게 요약하여 제시하거나, 그 특징을 명확하게 나타내 주는 표로 작성하여 제시해 줄 것 등을 제의하였다.


고려시대 牽龍의 운영과 무반관직
金 甫 桄
1. 머리말
2. 牽龍의 성립 시기에 대한 검토
3. 牽龍職과 무반관직의 관계
4. 견룡의 운영 배경과 의미
5. 맺음말

견룡은 고려시대 금군의 한 조직이다. 견룡에 임명된 여러 사례에서 무반관직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은 견룡과 무반관직의 관계를 해명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원래 고려의 국왕은 ‘응양군’과 ‘용호군’이라 불린 2군이 지켜야 했다. 그런데 2군에 대한 충원방식을 규정한 정종의 1045년 행정명령이 보여주는 것처럼, 2군에 충원되던 세습군인계층인 ‘군반씨족’이 점차 붕괴되어 갔다. 그래서 그들이 담당하여 국왕 시위 업무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1095년에 쿠데타가 일어나 조카인 헌종을 쫓아내고 숙종이 즉위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숙종에게 국왕 시위를 강화해야 된다는 점과 자신을 지지해준 군부세력을 포상해야 된다는 당면 과제를 주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왕을 시위하기 위한 새로운 조직인 견룡이 성립되었다. 견룡은 2군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중앙군 조직(2군6위)에서 무예 등을 갖춘 이들을 선발하여 구성하였다. 중앙군은 무반의 체계 속에 있으므로, 견룡은 자연스럽게 무반관직을 지니게 되었다. 원래 고려의 관직은 임무를 나타내는 본연의 기능 이외에 관인의 지위를 표시하는 역할도 하였다. 이런 관직을 본품관직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반관직도 본품관직이었다. 그런데 군반씨족의 붕괴 과정에서 중앙군의 임무가 수행되지 못하면서 견룡이 국왕의 시위라는 중요 업무를 대신하였다. 그에 따라서 무반관직은 관인의 지위를 나타내는 기능을 주로 표시하게 되었고, 견룡은 해당 관인의 임무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견룡으로 임명된 관인은 견룡과 무반관직이라는 두 개의 관직을 지녀야만 했다. 이런 결과로, 견룡은 본품관직인 무반관직과 달리 겸직이었다. 동시에 무반의 체계 내에서 승진이나 전보되는 것이 아니어서 명령문서양식도 구분되었다. 무반관직은 인사 문서인 비․판으로 임명되고 견룡은 일반 명령 문서인 선지로 임명된 것이다. 견룡을 운영함으로써 몇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첫째, 고려는 정예화된 이들로 견룡을 구성하여 왕실의 시위를 맡길 수 있었다. 둘째, 소수의 정예화된 이들이 왕실을 시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견룡의 정치적․사회적 위상이 올라가 마치 ‘청요직’처럼 인식되었다. 셋째, 왕실시위를 정예화하는데 정부는 새로운 재정을 투입하지 않고 기존의 무반에서 우수한 이들을 이용함으로써 재정을 절약할 수 있었다.


미국 흑인 건국세대의 이념과 활동
李 英 孝
1. 머리말
2. 흑인 건국세대의 이념
3. 흑인 건국세대의 활동
4. 맺음말

미국 공화국 건설의 공로는 온전히 백인들의 몫은 아니었다. 흑인 건국세대는 군대 복무, 정치 논쟁, 종교 조직 등에 참여하여 ‘자유와 평등’이라는 독립선언서의 건국이념에 맞게 미국 사회를 만들려고 했던 ‘흑인 건국자들’이었다. 흑인 건국세대는 독립 전쟁에 참여하고, 프리메이슨 지부 등을 결성하여 인류 평등의 이념을 추구하고, 인종 正義와 공화국 시민의 미덕(civic virtue)에 대한 공적 담론에 참여하는 등 국가 건설에 일익을 담당했다. 그들이 주 의회에 자유 청원을 하고 노예노동에 대한 보상을 청구하며, 미국 ‘시민’에 합당한 권리와 자유를 요구했던 것은 백인 건국자들이 건국이념에 합당한 실천을 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흑인 급진주의자들은 공공 영역에서 인종적 억압에 맞서는 ‘저항 대중’과 대항 담론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신문 투고, 연설과 설교, 저술 등을 통해 발언하고 대중에게 노예제의 억압을 알리는 일종의 도덕적 나침반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은 미국의 혁명적 공화주의의 유산을 다루면서 그 이념의 한계를 지적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인종적 노예제를 존속시키는데 공모한 것을 드러냈다. 즉 미국 혁명의 올바른 유산은 ‘노예제 폐지’가 되어야 한다고 정의하고 백인 건국자들에게 혁명 이념의 실천을 요구했다. 미국 혁명기와 건국기 흑인 세대의 활동에 대한 이러한 연구는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현장에서 미국사를 가르칠 때 18세기말의 시대적 의의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즉 백인 건국자들보다도 오히려 흑인들이 보편적 건국이념에 더 다가서려는 활동을 전개했고, 그런 점에서 그들의 자유 청원과 시민권 주장, 그리고 노예제 반대 운동은 미국 건국의 중요한 유산의 일부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批評論文]
고등학생의 선다형 문항 풀이 과정과 시험전략 고찰
朴 振 東
1. 머리말
2. 학생의 문항 풀이 과정 조사 연구의 절차
3. 문항 풀이 과정의 記述
4. 생각 말하기에서 나타난 문항 풀이 전략
5. 맺음말

일회 사용으로 끝나는 시험 문제는 사전에 풀어보게 할 수 없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출제 과정에서는 수험생 수준을 고려해야 하는데 수험생이 풀어 보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고등학교 교사가 간접적으로 수험생 입장에서 문항을 검토한다. 그런데 교사가 수험생일 수는 없으므로 시험 후 답지 반응 결과를 보면 예측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선다형 문항 제작의 원리와 절차는 정교해졌지만 수험생이 선다형 문항을 풀이하면서 어떻게 사고하며 어떤 시험전략을 사용하는지는 명료하지 않다. 교육에서 사고란 무의식적인 정신활동을 포함한 모든 정신활동이 아닌, 인지적 측면에서 행해지는 의식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정신활동으로 한정한다. 이러한 사고를 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능력을 사고력이라고 한다. 역사적 사고력은 역사지식을 이용하여 역사문제에 관해서 가설을 산출하거나 해결방안을 모색하면서 역사이해에 도달하려는 의도적이고 복합적인 정신활동을 수행하는 인지적 조작능력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문제를 풀이하는 사고 과정과 시험전략은 역사학습 일반에 적용되는 사고력과는 동일하지 않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수험생에게 시험이란 역사학습을 통해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보다는 단시간에 높은 점수를 얻는 것에 일차적인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문제 풀이 능력은 제한된 시간 내에 반복된 연습을 통해서 풀이 전략과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된다. 이것을 포함한 수험생의 문항 풀이에 대한 정보가 많이 수집된다면 문항를 제작하는 출제자, 학생의 수준에 맞추어 가르쳐야 하는 교사, 문항 풀이를 통해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역사지식과 능력도 함께 얻고자 하는 수험생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수능이 사고력 중심의 탐구형 문항을 출제하고 있으므로 학생들이 수능 문항을 어떻게 풀이하는지 그 과정을 고찰하여 학생들의 사고 과정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2009학년도 수능 한국 근·현대사 문제 중 일부를 학생에게 질문지 조사, 생각 말하기(think-aloud protocol) 등의 방법을 활용하여 문항 풀이 사례를 수집하였다. 조사는 2009년 1월부터 3월 사이에 이루어졌다. 최근에 이루어진 조사가 아니고 소수의 특정 문항에 대해서 매우 적은 학생이 응답한 결과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앞으로 이런 연구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제안하는 정도의 효용성을 기대해 본다.


[飜譯論文]
역사교과서의 서술과 유럽중심주의
梁 豪 煥
1. 서언
2. 유럽중심주의와 역사교육
3. 유럽사의 표준화와 목적화
4. 해명 주체로서의 비유럽
5. 결어

역사를 학습하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는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는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역사교과가 자국사만이 아니라 외국사, 세계사를 포함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현재 다방면에 걸친 국제교류는 피할 수 없으며 대다수의 국가들이 정책적으로 개방과 교류를 강조하는 실정이다. 역사학도 이에 대응하여 우리와 ‘다른’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학생들이 나름대로의 안목을 키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다른 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또한 역사학의 중요한 책무이다. 타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에 앞서 그들을 어떻게, 왜 구분하는가는 자아에 대한 인식과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바라볼 때, 우리 자신의 시각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형성된 시각을 그대로 수용하여 바라본다면, 당연히 그 출발점부터 왜곡될 수밖에 없다. 세계사는 더 이상 단순히 우리나라 역사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역사를 합친 것이라고 인식되지 않는다. 세계사가 우리 역사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2007)에 개정된 새로운 교육과정에 따라 중·고등학교에서 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하여 ‘역사’라는 명칭으로 과목을 개설한 것도 그간 국사와는 별도로 세계사를 편성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반복되고 있는 역사교육의 위기와 정상화 방안에 대한 논의는 우리 역사학계의 연구경향과 성과 전반에 걸친 점검과 반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란은 우리에게 세계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연관되어 기왕의 세계사의 개념과 세계사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확대되고 있다. 서구가 기획하고 구성하여 여전히 우리 자신의 관점이 결여되어 있는 유럽중심의 세계사를 현재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해, 세계사를 바라보는 스스로의 위치와 시각을 갖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이미 발명되고 고정된 설정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제기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세계사 서술에서 서구중심적 시각을 비판하는 논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그 중 일부는 세계사 교과서에 반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유럽중심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서양사학계와 세계사 교육에서 핵심적인 논쟁의 주제로 남아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유럽중심의 역사인식이 형성된 배경과 그것의 수용과정, 그리고 이러한 논의가 교육과정에 미친 영향을 정리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특히 학계에서 제기된 유럽중심주의의 비판이 역사교육에 미친 여파와 이를 극복/개선하기 위해 제시된 방안을 살펴보고, 이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문제점을 지적할 것이다. 유럽중심주의의 해체는 결국 교과서에 드러난 그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교과서 서술에 나타난 사례를 통해 유럽중심적 시각이 어떻게 구현되어 왔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역사학습의 국면에서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제안해 보고자 한다.


[彙 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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