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企劃論文 - 역사교육 이론 연구의 현황과 과제]
역사교육 개념어의 용례 검토
- 역사적 사고, 역사해석, 역사인식, 역사의식 -
金 漢 宗
1. 머리말
2. 용어의 기본적 의미
3. 개념어의 용례
4. 용례에 나타난 역사교육 용어의 개념과 문제점
5. 맺음말
‘역사적 사고’, ‘역사인식’, ‘역사해석’, ‘역사의식’은 역사교육 연구에서 자주 나오는 개념어이다. 이러한 용어들은 철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고정된 하나의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역사교육 개념어들을 다양한 의미로 사용한다고 해서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역사교육 이론을 둘러싼 토론이 활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점도 역사교육 연구가 척박한 현실 탓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제 역사교육 연구자가 늘어나고 연구가 활성화되는 시점에서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역사교육 논문들이 이 용어들을 어떤 개념으로 사용하였는지 검토하였다. 논문 내용의 맥락에서 이들 용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를 토대로, 역사교육에서 이들 용어를 어떤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 제안하는데는 미치지 못하였다. 많은 역사교육 연구에서 이들 용어를 별다른 개념 규정 없이 사용하였다. 어쩌면 그 이유는 구태여 개념을 엄밀히 규정하거나 여러 개념을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이 글에서 개념어의 용례를 검토한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논문 안에서 사용된 용어 자체의 개념보다는 그 개념어와 관련된 견해들을 논하는 방향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들 용어가 학술어 이전에 일상용어로, 구태여 사용할 때 일정한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자의 연구에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일정한 범위의 개념 없이 용어들을 사용할 때, 글을 매개로 하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용어가 학술어로 정착되기 어렵다. 이는 직접적으로 역사교육 연구의 폭을 넓히고, 수준을 높이는데 커다란 지장을 줄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들 용어의 개념을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 의미가 무엇인지 역사교육 연구자들이 의견을 모으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래야 역사교육 연구의 성과와 문제점을 둘러싼 토론과 비판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교육 평가연구의 현황과 과제
崔 祥 勳
1. 머리말
2. 역사교육 평가연구의 양적 증가
3. 역사교육 평가연구의 소재 확대
4. 역사교육 평가연구의 나아갈 방향
5. 맺음말
1955년에 역사교육연구회가 창립되면서 역사교육 연구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상당량의 연구가 축적되었고, 이들 연구의 성과와 과제에 대해 지금까지 몇 차례 검토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본고의 주제인 역사교육 평가에 관한 선행연구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한 사례는 별로 없었다. 송춘영은 1998년까지 이루어진 역사교육 연구를 살펴보았는데, 그에 따르면 대학논문집과 학술지에 실린 총 377편에 달하는 글 중에서 역사교육 평가와 관련된 글은 5편에 불과하였고, 총 311편이 발표된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중에서 역사교육 평가와 관련된 논문은 3편밖에 없었다. 이로 볼 때 1990년대 말까지 역사교육 평가연구는 역사교육 전체 연구 중에서 겨우 1% 내외의 성과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평가 관련 연구가 저조하였던 것에 대해 윤세철은 ‘내용만 잘 가르치면 결과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요식행위로 평가에 임하였던 탓’이라고 보았다. 역사교육 평가연구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은 정선영의 연구 성과 검토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역사교육 연구 50년을 검토하는 글에서 광범하게 역사교육 연구 성과를 살펴보았지만 평가관련 연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歷史敎育』에 실린 글을 중심으로 살펴본데다가 평가관련 연구 성과도 미미한 탓이었겠지만, 역사교육평가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도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역사교육 연구자가 증가하고, 교육대학원의 석사학위논문이 증가하면서 역사교육 평가연구도 상당히 늘어났다. 다른 분야의 역사교육 연구 성과와 비교하지 않았으므로 평가관련 연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알 수는 없으나 조금은 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교육 평가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가 늘어 역사교육 평가와 관련된 글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 국가시험에 대한 교육적 관심이 높은데다가 중등학교의 수행평가에 대한 방안모색이 활발하였던 탓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간의 역사교육 평가연구의 현황을 정리하고 문제점을 짚어보며 평가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본고에서는 역사교육연구회의 『歷史敎育』, 한국역사교육학회의 『역사교육연구』, 역사교육학회의 『역사교육론집』, 웅진사학회의 『역사와 역사교육』,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의 『청람사학』, 한국사회과교육연구학회의 『사회과교육』 등 학술지에 실린 글과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을 중심으로 역사교육 평가연구의 현황과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고에서 살펴본 글은 주로 한국교육학술정보원홈페이지에서 검색되는 글을 토대로 하였다.
역사교육의 내용 선정과 조직 연구의 현황 및 문제
姜 鮮 珠
1. 머리말
2. 역사교육의 내용 선정의 기준
1) 내용의 정의 문제
2) 내용 선정 기준의 문제
3. 역사교육에서 내용 조직과 구성
1) 내용 조직: 계열화의 문제
2) 내용 구성의 문제
4. 맺음말
본고는 최근 역사학계의 변화, 학습자 지식의 증가라는 측면에서 역사교육에서 내용 선정, 조직, 구성 연구에 어떤 새로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지 검토했으며, 이 분야와 관련하여 종래에 크게 검토되지 않았던 측면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제시했다. 내용 선정 기준이나 조직, 구성 방법에 대한 중요한 연구들이 진행되었지만, 기준들과 방법들에 대한 논의를 더 진행시키고, 이론적으로 확대하는 작업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최근 역사학계의 변화와 학습자에 대한 지식의 증가는 종래 안정적으로 체계화된 것처럼 보이는 역사교육 이론들에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한다. 특히 역사를 복수로 보는 관점은 종래 역사교학계가 전제했던 역사가 어떤 것인가 성찰해 볼 것을 요구한다. 어떤 역사로 역사교육 내용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내용의 범위, 선택 기준과 조직 및 구성 원칙도 달라진다. 내용 정의에는 내용을 정의하는 사람의 지식관, 역사 인식, 역사교육관, 그가 인식하는 역사교육의 변화 방향,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층의 문화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요인들이 내용 선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와 함께, 그 이외의 요인들을 고려한 내용 선정의 기준 및 조직, 구성의 원칙에 대한 폭넓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사실의 특징과 역사교육의 특수성
梁 豪 煥
1. 서언
2. 사고력의 과잉과 사실의 위축
3. 역사적 사실의 특징
4. 역사교육의 특수성
5. 결어
사실은 역사의 기본재료이며 역사는 무한히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현재 교과서에서 역사적 사실은 ‘과거에 일어난 사실’로서의 특징과 ‘조사되어 기록된 과거’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밝히고 있다. 사실의 이러한 두 가지 특성은 바로 역사(학)의 특성이기도 하다. 즉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가리키기도 하고 또한 그에 대한 기록·서술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사건과 기록은 모두 사실을 근본 요소로 하여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역사학습의 주된 재료가 사실과 사건, 그리고 이에 대한 기록과 서술인 것이 분명하다면 사실의 의미와 가치를 따지는 것은 전문 역사연구에만 해당되거나 필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는 별도로, 역사학습에서 사실은 단순한 암기의 대상처럼 간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역사적 사고력 양성이 역사학습의 주된 목적으로 부각되면서 역사적 사실은 역사교육의 연구 분야에서도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의 존재와 인식에 관한 문제는 실증주의자와 포스트모던 경향의 구성주의자 간의 논쟁의 핵심이다. 역사학의 성격과 본질을 가름하는 문제의 근본인 사실이 역사교육에서 중요시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가르칠 재료가 되는 역사적 사실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을 서술하는 양식과 가르치는 방법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내용에 따라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식의 서술이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고, 권력관계의 변화와 같은 경우에는 구조화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요리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재료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 맛을 내기 위해서는 그 재료에 맞는 요리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재료와 무관하게 어떤 요리법이 가장 바람직한지를 논의한다거나, 요리의 단계를 절차적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특정한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해야 하는 과정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가가 생각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것이고, 이 목적에 적합하게 내용을 구성하자는 주장도 유사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현재 역사적 사고를 강조하는 것은, 요리사가 요리를 만드는 데에는 모든 요리에 공통된 일반적인 절차가 정해져 있으므로 그 과정을 중시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달리 표현하면 막 역사를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에게 요리사처럼 요리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요리의 결과, 즉 만들어진 음식을 단순히 섭취하지 말고 요리사가 요리하는 방식을 익히라는 것이다. 요리를 하는데 요리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발상에서는 요리의 재료가 무엇이고 이것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경시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요리과정보다는 요리의 결과, 즉 음식을 소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로 말하면 학생 스스로 역사사실로부터 역사지식을 생산하는 것보다 연구의 결과로 얻어진 혹은 전해 내려온 역사지식-교과서를 통해서이든 다른 매체를 통해서이든-을 수용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음식을 어떻게 선택하고 맛보아야 하는가, 즉 제시된 역사지식을 어떻게 자기 나름대로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 중요성도 덜하지 않다. 물론 역사와 요리를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역사적 사고를 중시하는 사람은 이미 역사적 사고의 재료가 역사사실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관련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이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역사적 사고 관련 연구는 사고기능을 분류하거나 이것으로부터 하위영역을 구체화하는 데 주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에, 사고의 구체적인 대상-그것이 역사사건이든 사실이든-을 사례로 논구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역사교육의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 갖는 특징을 분석해 봄으로써, 이것이 역사 수업에 어떻게 고려되고 응용되어야 할지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역사 재현의 수정에 대한 중등학생들의 이해
- 역사영화를 중심으로 -
朴 珠 鉉
1. 들어가는 글
2. 연구의 설계와 절차
3. 역사 재현의 수정에 대한 학생들의 견해
4. 역사 재현의 수정에 대한 이해의 인식론적 경향
5. 나가는 글
본고에서는 역사영화에 나타난 과거 재현을 소재로 해서 시대에 따른 역사 수정에 대한 학생들의 접근을 살펴보았다. 면담에 사용된 시각 자료나 읽기 자료는 해당 주제에 대한 접근이 시대에 따라 그 역사적 의의에 대한 평가에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선정했으며 학생들은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역사 재현의 ‘역사성’의 문제를 탐색했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 역사 재현의 수정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은 역사 탐구에서 관점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아이디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개인적·집단적 편견으로서의 관점-교조적 역사 수정’과 ‘인지적 도구로서의 관점-정당한 역사 수정’의 두 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본 연구 응답자의 대다수를 차지한 전자의 경우, 역사 재현에서 관점의 역할은 시대에 걸쳐 ‘교조적’ 수정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본다. 어떻게 특정한 역사 재현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느냐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은 동아시아 삼국 간에 전개되고 있는 ‘역사분쟁’과 같은 ‘학교 밖’ 환경, 혹은 ‘대안적인’ 설명조차 ‘고정된’ 역사 지식으로 제시되는 ‘학교 안’ 환경의 영향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후자의 경우, 관점이 수행하는 역사 지식의 역동적 재구성을 ‘역사성’의 측면에서 그 정당성을 인정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둘 때, 역사 교실에서 역사 지식 형성의 문제를 당파적 이해의 문제 혹은 정체성의 정치학의 측면에서만 조명하기보다는 시공간적 범주의 선택이나 맥락의 구성과 같은 개념적 이슈의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역사 재현은 과거의 복제가 아니라 현재라는 ‘유리한 위치(vantage point)’에서 과거 사건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일종의 ‘그림’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영화는 역사 교실에서 유용한 학습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이전의 연구에서 제시됐듯이, 회화는 학생들의 역사 재현에 대한 가정을 탐색하는 데 유용한 연구 도구이자‘왜 특정 시기에 특정 과거가 특정한 방식으로 묘사 됐는가’와 같은 질문을 탐구하는 데 적절한 학습도구이기도하다. 영화라는 매체 또한 ‘묘사의 대상이 된 과거’, ‘특정 시기 재현의 특성’ 그리고 ‘현재 자신의 해석’ 사이의 관계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교육적 효능을 찾을 수 있다. 영화의 역사 재현은 감독의 관점의 산물이며 동시에 사회문화적 맥락의 공유와 광범위한 협상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각 영화가 창출하는 논쟁과 대립의 공적 영역이 다시 과거 재현의 경계를 결정하기도 한다. 역사 수업에서 역사영화의 이용은, 특정 역사 지식을 ‘결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서 역사 재현의 역사성의 문제에 대한 이해를 키울 수 있는 하나의 접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비 초등 교사들이 본 한국사교육의 문제점과 과제
宋 寅 州
1. 머리말
2. 한국사교육의 문제점
3. 한국사교육의 과제
4. 맺음말
해방 이후 교육과정의 시기별 개정에 따라 한국사교육은사회와 국사 및 한국 근·현대사라는 교과목으로 그 명칭의 변화와 더불어 내용이 구성되어 왔다. 하지만 때로 교과서에 서술된 역사지식은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중립성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특정 정권이 지향하는 정치성 혹은 당파성에 토대하여 짜여져 후유증의 반향 또한 컸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사교육이 빠른 사회적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아카데믹한 갈등에 대한 논쟁과 함께 “사회정의” 및 “국가(사회) 통합”이라는 당면 과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시각에서 볼 때, 그러한 점들은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 목적 달성을 전망하는 거울로써 한국사교육을 실현하는데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였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사회정의”와 “국가 통합”이라는 문제는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당파성에 따라서 다르게 이해될 수 있는 가변적인 성질의 것으로, 이러한 정치성은 자칫 한 사회의 규준을 도출하는데 필요한 공동체의 이해의 형성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사교육은 자국사로서 그 자체의 정당성과 위상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정세나 역학관계 및 한국사 자체에 대한 평가 혹은 한국사를 바라보는 시각, 교육 목표 설정이라는 몇몇 변수가 제기될 때마다 정치성을 민감하게 띨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일각에서 그 교육적 무용론이 제기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과 중국 등 주변 국가를 중심으로 한 역사왜곡 사태가 불거질 때면 급선회하여 역사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의 부상에 힘입어 세간의 시선을 끌기도 하였다. 현재까지도 이러한 패턴은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러한 사회적 동향과 맞물려 내부적으로 한국사교육에 대한 메타담론의 빈곤으로 말미암아 막상 내용선정의 기준과 타당성(합리성) 측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한국사교육이 과거의 개인이나 공동체가 공유하고 경험했던 세계를 오늘날 학생들의 학습을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우리 역사의 역동성과 가치를 발견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해방 이후 이제까지 한국전쟁과 분단, 민주화 등의 사회적 격변기를 겪으며 빚어진 현실적 제약과 모순 속에서, 정작 한국사교육의 방향과 성격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학습자들에게 단계적으로 요구되는 역사적 가치나 개념 제시를 둘러싼 메타담론에대한 논의는 기대한 것만큼 활성화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 결과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의 교양과정에 이르기까지 대략 10여 년 이상 한국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역사인식이나 의식의 정도를 살펴보면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후일 예비 초등 교사로서 현장에서 사회과(역사)를 지도하며 길잡이 역할을 수행할 교사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문제가 지니는 반향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이상의 문제의식 하에 필자는 최근 1년 동안에 걸쳐 한국사(1학년) 및 사회과교육Ⅱ(역사교육)의 강좌를 진행하면서 예비 초등 교사들의 종래의 학습 경험을 토대로 그들이 말하는 한국사교육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향후 학생들에게 필요한 한국사교육의 과제에대해서 몇 가지 정리하고자 한다. 이러한 본고의 작업은 앞으로 학습자들을 고려한 한국사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역사교육철학의 방향은 물론이고 그와 관련된 콘텐츠의 개발과 선정 및 방법과 이론적 틀의 정립을 위한 메타담론의 논의를 위한 기초 작업의 하나로서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즉 과거에 학습한 경험을 근거로 한국사교육을 바라보는 예비초등 교사들의 역사인식의 행방과 성격에 착안하여 연구사적 문제의식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하겠다. 조사 대상은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구교육대학교 1학년 2개 반과 3학년 3개 반이다. 수강생은 각각 32~35명 정도로 구성되었으며 조사 방법은 스피드데이팅(speed dating: 학생들 간의 1대1 대화전략)을 실시한 후 4~5명 단위로 그룹을 만들어 학생들이 그룹별로 토의한 내용을 그래픽오거나이저(Graphic Organizer)라는방식을 통해 구체화하도록 하였다.
[論 文]
공포정치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프랑스 역사교과서와 공포정치 -
梁 希 英
1. 머리말
2. 공포정치의 내용과 해석
3. 프랑스 역사교과서의 공포정치 서술
4. 맺음말
19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의 바스티유 함락으로부터 200년이 흐른 이 날, 프랑스에서는 혁명 200주년이 성대하게 기념되었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거행된 대규모 퍼레이드에는 백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려 혁명의 구호 중 하나인 ‘형제애’를 표상한 퍼레이드에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냈다. 200주년 기념행사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우파 신문 『르 피가로(Le Figaro)』마저 이튿날 1면을 “혁명의 승리”라는 제목의 기사로 채웠다. 프랑스의 유력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는 파리가 다시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기념행사의 대중적 성공 이면에는 프랑스 역사학계의 치유할 수 없는 분열이 도사리고 있었다. 프랑스혁명사 연구자들은 혁명의 해석을 두고 이미 오랫동안 대립하여 실상 200주년을 함께 기념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한 대립은 학문적 차이를 넘어 정치적 함의를 갖는 것이었던 만큼 역사학계로 한정된 것도 아니었다. 200주년은 오랜 대립을 다시 무대에 올린 데 불과했다. 그러한 분열과 대립의 중심에 ‘공포정치’가 있었다. 200주년 기념행사의 책임자였던 역사가 장노엘 잔네(Jean-Noël Jeanneney)는 애초에 공포정치를 둘러싼 논란을 염두에 두고 혁명 전체를 1년에 걸쳐 기념하여 발미전투와 국민공회의 긍정적인 면들을 기념하면서도 공포정치를 과도하게 강조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1792~1794년(공포정치시기를 포함하는 국민공회 개회 기간)의 원칙들까지 포함해 혁명의 유산이 갖는 풍요함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반대 진영의 역사가 모나 오주프는 “1793년 이후 혁명은 공화국을 법 위에 건설하기를 거부했다”고 지적하고 “이 고의적인 권리의 정지”는 혁명을 기념할 수 없게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내전으로 15만 이상이 사망한 방데(Vendée)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프랑스혁명이 ‘인간의 권리’의 혁명이라는 주장은 기만적인 것이었다. 공포정치를 둘러싼 논쟁은 자유·평등·형제애의 혁명이 어떻게 형제살해의 내전으로 이어졌는가에 대한 의문을 넘어 혁명 자체의 의의를 부정하고 혁명에 대한 기념을 거부하는 데 이르렀다. 공포정치의 해석을 둘러싼 대립은 역사교육과 관련해서도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프랑스혁명은 흔히 신분제와 봉건제, 절대주의를 타파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프랑스국민을 형성한 사건으로 설명되어 왔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은 국민적 정체성의 형성, 애국심과 시민정신의 함양이라는 역사교육의 목표에 가장 적절하게 부응하는 중요한 주제였다. 그러나 가혹한 탄압과 내전으로 얼룩진 공포정치의 문제로 눈을 돌리면 프랑스혁명의 역사적·교육적 의의에 대한 판단은 그리 간단치 않게 된다. 그렇다면 프랑스 역사의 자부심인 프랑스혁명의 일부이면서도 혁명의 정신 자체를 배신하는 것으로 보이는 공포정치를 프랑스 역사교과서들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이 글은 이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프랑스 역사학계에서는 지난 40년간 공포정치의 해석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진행되었다. 이미 ‘정통해석’이라 불리는 견해가 확고한 상황에서 ‘수정’해석이 대두되었고 ‘수정’해석의 공세를 통해 혁명사 전체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연구 성과들이 출현했다. 그렇다면 200주년으로부터 10여년이 흐른 뒤에 발간된 2000년대 역사교과서들은 상이한 시각과 해석들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이러한 문제 또한 이 글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주제이다. 먼저 2장에서는 공포정치란 무엇인지 설명하고 공포정치에 대한 현재까지의 논쟁을 살펴보겠다. 이어 3장에서는 2000년대에 출간된 프랑스 중고등학교 교과서들에서 공포정치를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검토하겠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위에 제시한 문제들에 답하고 공과에 대한 해석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교과서의 바람직한 기술방식에 대해서도 모색해 보겠다.
[書 評]
이영석 著, 『영국 제국의 초상 - 19세기 말 영국 사회의 내면을 읽는 아홉 가지 담론들』
朴 贊 玲
[彙 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