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수업 이론의 진전과 적용상의 도전 - 金玟政
1. 머리말
2. 역사 수업 이론의 재개념화와 현황
3. 새로운 역사 수업의 시도와 도전
4. 맺음말
기존의 역사수업이론이 수업 모형과 교수전략을 제안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연구에서는 현행 역사 수업의 문제를 진단하고, 역사학의 연구 성과를 교육적 목적에 따라 교수·학습 내용으로 치환할 때 내용과 가장 부합되는 교수·학습 방법을 구안하여 학생들이 역사를 역사답게 이해하도록 하는 관점과 각론 차원의 가르칠 궁리를 역사 수업 이론이라고 재정의하였다. 또한 역사과 교수·학습과 수업에 대한 연구 성과가 교사의 수업 실행 속에 얼마나, 어떻게 반영되어 있고 효과적인지 살펴보는 노력이 미진하다는 점에서 교사들이 역사 수업의 문제로 인식하는 지점을 살펴보고, 역사교과 중심의 사료기반 탐구학습과 학습자 중심의 배움의 공동체에 따른 역사 수업 이론과 이를 수업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분석하였다. 역사교육의 초점이 역사 인식과 역사 지식의 구성과정에 참여해 보는 것으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수업 이론은 여전히 효과적인 역사학습을 목표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어 교육과정과 역사 수업 이론은 길항관계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역사 교과서 내용 구성, 교사교육과 임용고사의 평가 영역에서 역사적 사고력이 ‘내용’과 분리되어 겉돌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은 이러한 난맥상을 가중시킨다. 학습자가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고 역사 지식과 해석의 과정을 인식하도록 교육과정이 구성되려면 역사교육의 내용과 방법론적 지식을 결합하여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학습자의 역사 이해 양상 연구의 바탕을 두고 인지적 충돌이나 도전이 되는 자료, 학습 과제, 내러티브를 구안되어야 한다. 이처럼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의 역사 인식과 이해가 학습의 과정과 절차를 제시하는 전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사가 ‘역사적으로 사고하도록’ 역량을 키워주는 교사교육과 연수프로그램에 대한 필요성을 확인하였다.
● 발전선 학습의 이론적 토대와 가능성 - 文敬鎬
1. 머리말
2. 발전선 학습의 개념과 특징
3. 발전선이 구현된 교과서 사례 분석
4. 발전선 학습의 적용 방안
5. 맺음말
이 논문에서는 역사교육의 내용조직 원리 중의 하나인 발전선 학습의 개념과 특징을 정리하고,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안으로 발전선 학습의 도입을 제안하였다. 발전선 학습은 특정한 역사적 주제(topic)가 전후 시기와 비교하여 어떠한 변화․발전을 거쳤는지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학습하는 것으로 주제 중심 학습 또는 연대기적 학습과 혼동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수업 주제를 독립시켜 장기간에 걸쳐 다룬다는 점에서 주제학습과 구분되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대기학습과 구분된다. 발전선 학습은 특정한 역사적 주제(topic)가 전후 시기와 비교하여 어떠한 변화․발전을 거쳤는지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학습하는 것으로 주제 중심 학습 또는 연대기적 학습과 혼동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수업 주제를 독립시켜 장기간에 걸쳐 다룬다는 점에서 주제학습과 구분되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대기학습과 구분된다. 발전선 학습은 역사에서 일어난 모든 것들을 다루지 않으므로 학생들의 역사 수업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line of development는 학생의 경험, 지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유발시키는 데에도 유용할 수 있으며, 여러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인과 관계에 대한 인식을 기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발전선 학습에 따라 역사교과서를 제작하면 역사 교과서가 단순히 표면적으로만 계열화를 시도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교 및 지역의 특성과 요구를 반영하는 흥미있고 기능적인 교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현행 교육과정 초·중·고 한국사 내용 구성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계열성을 중심으로 - 文載景·方智嫄
1. 여는 글
2. ‘계열화’ 논의의 국면들
3. 초등학교 ‘사회’ 한국사 내용 구성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4. 중·고등학교 한국사 내용 구성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5. 맺는 글
역사교육 계열화 문제는 오랫동안 학계와 학교 현장의 해결과제였으면서도 큰 진척이 없었다. 이에 계열화 논의의 필요성까지 포함하여 지금까지의 접근 관행 또는 경향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앞으로의 계열화 논의를 생산적으로 끌어가는데 유의미한 연구 성과도 꾸준히 축적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계열화 논의를 세 국면으로 나누어 재 개념화하고, 현행 한국사 교육의 문제점을 점검한 다음, 지금까지의 관련 논의를 토대로 개선 방안을 논의하였다. 계열화는 학습 내용의 체계화를 위한 다차원적 노력으로 재 개념화 될 필요가 있겠다. 체계화를 위해 고려해야 할 지점이 많은 만큼 계열화 논의도 어렵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 계열화를 위해 제안된 아이디어나 이론은 교육과정이나 교과서 반영을 염두에 두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실효성 없는 형식 논리라는 비판, 성급한 적용으로 교육 현장에 혼선을 초래하였다는 비판에 또 다시 직면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6년간의 초등학교 단계에서는 역사라는 과목에 흥미를 느끼고 친숙해 질 수 있도록, 학생의 생활 경험을 충분히 고려한 점진적 내용 구성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중‧고등학교 한국사는 각각에서 배우는 시기와 학생 활동의 비중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특성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사 교육 일변도의 내용 구성에서 벗어나 최근 역사학계에서 주목하는 관점들을 수용함으로써 학교급별 역사교육의 특성을 부각시키는 내용 구성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계열화는 한 두 사람 전문가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연구자와 교사들의 ‘집단 지성’을 필요로 하는 과제다. 무엇보다 국가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정책 단위가 합리적으로 구성되고 협럭적으로 운영 될 때, 계열화의 진전을 이룰 수 있다. 각 과목의 교수요목(성취기준) 개발 단계에서 학교급간, 유사 과목 간 내용 범위와 수준을 상호 협의하고 조정하는 과정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 기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초‧중‧고 개발진이 협력하며 연구 개발을 진행해야 한다. 이런 제안은 이전에도 계속 반복되었던 것이다. 제안을 실천으로 옮기려는 정책 의지가 절실하다.
● 역사교과서의 사회문화적 기능과 국가 이데올로기 - 金漢宗
1. 머리말
2. 역사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점과 역사교과서
3. 문화적 도구로서 역사교과서와 국가
4. 역사교과서의 국가 내러티브
5. 맺음말
역사교과서는 학교교육을 위한 교재로 사용될 뿐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역사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화적 도구의 기능을 한다. 국가와 지배집단은 역사교과서를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사회에 전파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이 글에서는 사회문화적 도구로서 역사교과서의 성격과 지배세력이 이를 어떻게 이용하려고 하는지를 검토하였다. 국가와 이를 통치하는 지배세력은 자신들의 정책이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사회구성원의 사고와 행동을 유도하는데 역사교과서를 이용한다. 역사해석을 독점하고 ‘공식적 역사’를 교과서에 서술하고자 하는 의도가 여기에 있다. 사회구성원의 역사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내세워 역사교육의 위기를 강조하는 목소리는 종종 역사교육에 대한 정치적 의도를 깔고 있다. 역사교육에서 역사의식이나 비판적 사고를 배제하고, 역사교과서에 발행과정과 내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역사해석과 관점을 역사교과서에 넣으려는 한다. 역사인식의 차이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풀리고 이념 논쟁으로 몰고 가는 것도 이러한 의도를 담고 있다. 국가 내러티브는 역사교과서에 국가 이데올로기를 담는 가장 전형적 방식 중 하나이다. 국가 내러티브가 담는 가장 흔한 소재는 건국과 발전이다. 이런 이야기는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 정체성과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 자유와 발전이라는 미국의 국가 내러티브는, 한국현대사에서도 국가 내러티브의 핵심 줄거리이다. 이승만 정부의 내러티브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이며, 박정희 정부의 내러티브는 국가 발전이다. 역사교육의 위기는 역사지식의 부재나 부족이 아니라 역사적 사고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역사교육의 가치는 역사의식을 기르고 비판적 사고를 경험하는데 있다. 국가와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가 가지는 문제점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비판의식을 막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역사교육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국가와 교육당국이 역사 해석을 개방해야 한다. 국가와 지배세력의 역사관과 독점적 역사해석에 기반을 둔 역사적 사실보다는 융통성 있고 다원적인 역사인식이 역사교육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국가와 지배집단이 만들고 보급하려는 ‘공식적 역사’에 반하는 역사까지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
● 역사의식조사로 본 학생들의 가치판단 탐색 - 李海榮
1. 들어가는 말
2. 역사수업에서 드러나는 가치
3. 연구방법
4. 역사의식조사를 통해 본 학생들의 가치에 대한 반응
5. 중·고등학생의 역사에 대한 가치판단 양상
6. 나가는 말
이 글은 역사의식조사를 통해 드러난 경향성 중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가치 판단 측면을 짚어보았다. 해석을 해야 하는 학문의 특성상 관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관점을 가진 이상 어떤 사건이나 사실에 오호나 시비 표현, 과거의 가치, 현재의 가치 등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역사는 역사가들이 과거의 사실들을 토대로 과거의 상황과 과거의 인물의 처지를 감안하여 서술하기에 어떤 특정한 가치를 지향하다보면 학문 활동을 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역사교육은 역사 못지않게 교육도 중요하다. 학생이 지식을 쌓고 해석을 하고 관점을 만들고 가치 판단을 하여 실천하는 것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들에게 드러나는 현재적 가치를 소홀히 할 수 없다. 현재적 가치를 기반으로 학생과 연계되는 역사, 학생에게로 생생하게 걸어가는 역사수업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학생들이 역사를 공부하면서 드러내는 과거의 가치와 현재의 가치는 잘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역사교육에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배운 학생들에게 이들 가치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폈다. 유구한 역사, 문화적 역량, 단결력과 끈기를 갖춘 민족성,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자세 등 민족주의적 요소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는데, 중·고등학생 간 큰 차이가 없이 고정된 듯 보였다. 그리고 학생들은 민주적 가치에 매우 호의적이었으며 중학생에 비해 고등학생들이 이 가치에 더 의미를 두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담론만큼 특정 담론이 형성되어 있지는 않았다. 이렇게 드러난 이유를 교과서, 수업, 학생과 교사면담 등을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볼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역사의식 조사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표집학생과 표집학교의 선정, 설문방식, 통계 처리 방식, 결과 활용과 같은 방법적 문제부터, 학교마다 문화가 다양한데, 과연 일반화할 수 있을까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제들이 존재한다. 2010년 1차 조사이후 많은 관심과 도움으로 방법적인 부분을 정교화하고 심층면접을 마련하여 학생들의 역사 이해 양상을 지속적으로 살펴오고 있다. 아직도 설문결과를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고 통계자료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하며 기타 제반 조건을 엄밀하게 검토하는 등 해결해 나가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이 조사는 중·고등학생들의 경험적 자료를 축적하여 학생들이 역사교육의 중심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학생들의 역사 이해에 관한 정보가 부족한 시점에서 학생들은 역사를 어떻게 배우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 유럽중심주의 담론을 통해 본 역사교육의 과제─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도전─ - 姜鮮珠
1. 머리말
2. 역사교육에서 유럽중심주의와 식민주의 극복의 가능성
3. 맺음말을 대신하여: 역사교육의 과제로서 정전화에 대한 경계
2000년대 이후 역사교육계는 새로운 세계사/지구사 논의의 시작과 함께 유럽중심주의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소개된 유럽중심주의 비판 담론 뒤에는 포스트모던 역사인식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토대가 되고 있다. 포스트모던적 역사 인식론은 담론으로서 역사의 성격을 부각시키면서 근대 유럽중심적 역사관이 생산되고 유포된 정치적 맥락을 분석할 수 있는 연구 방법을 제공하였다.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연구자들은 유럽중심 역사관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19세기 제국주의적 세계관을 ‘세련된’ 문명사관으로 포장하여 식민주의를 은연중에 관철시키고 있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분석하였다. 억압과 착취를 낳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해체를 추구하면서 역사학에서 식민주의 유산을 영속화시키고 있는 유럽중심주의의 가면을 벗긴 것이다. 과장된 유럽의 성과에 날카롭게 의문을 제기하면서 근대의 계보에 대해 성찰하고 다시 써야한다고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연구방법과 문제의식에 기초한 유럽중심주의의 해체와 새로운 세계사/지구사의 추구는 2000년대 초에는 주로 세계사 교육에서 역사관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되었다. 역사 연구와 교육에 관철되고 있던, 우리가 정전으로 신뢰했던 것을 문제화하면서 망각하고 있던 기억들을 되살리는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유럽중심주의 비판 담론은 역사관을 넘어 ‘역사학’이라는 지식 구조 자체의 폭압성과 이데올로기성까지 부각시키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도전은 학교 역사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할 것을 요구한다. 본고에서는 국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포스트모던·포스트콜로니얼 관점의 ‘유럽중심주의’ 비판 담론을 중심으로 역사교육계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 역사교사의 역사교육 목적에 관한 사례 연구─심층 면담과 수업 관찰을 중심으로─ - 白銀珍
1. 머리말
2. 연구 방법과 대상
3. 심층 면담을 통해 본 역사교사의 역사교육 목적
4. 수업을 통해 본 목적의 구현과 굴절
5. 맺음말
본 연구는 역사교육의 목적을 설정하고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주체로서의 역사교사를 주목하고자 하여, 역사교사의 인식과 수업 실천을 함께 연구하였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사례 교사를 선정하고 역사의 의미와 역사교육의 목적에 대한 사례 교사의 인식을 심층 면담하였다. 또한 수업 참관을 통해 사례 교사가 생각하는 역사의 의미와 역사교육의 목적이 실제 수업 실천 과정에서도 드러나는지, 드러난다면 그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교사는 어떤 시도를 하거나 하지 못하는지를 관찰하고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사례 교사의 역사교육 목적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사례 교사가 자신의 인식과 실천에서 보여 주는 맥락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사례 교사인 윤 교사는 역사가 “과거를 공부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갖게 하는 학문”이라고 보았고, 윤 교사는 역사적 결과물에는 생성과 소멸, 흥망성쇠가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본다는 점과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역사교육을 통해 가르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학생들이 올바른 가치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을 주어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유익하다는 점을 동시에 지적하였다. 또한 윤 교사는 역사수업의 특성상 학생들이 활동을 많이 한다고 역사적 사실을 많이 또는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역사수업에서 주로 역사적 사실을 읽고 이해하고 이를 글로 정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학생들이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고 이를 요약해 글로 정리하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효과와 역사적 사실을 자기 머릿속에 남기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이는 텍스트를 읽고 쓰는 능력을 함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수업 방법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근무하는 학교가 학년 당 학급 수가 비교적 적은 학교이고 동료 역사교사와 한 학년씩 맡아 2년씩 가르치기로 합의한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학급 당 학생 수가 많다는 점이 자신의 수업 방식의 한계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이 윤 교사의 사례를 보면, 역사교사가 생각하는 역사교육의 목적이 반드시 교과에 특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는 의무교육으로서의 중학교 교육과정이 기초 소양을 닦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역사 교과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가치관을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았다. 동시에 역사학습의 내용이 되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역사학습을 통한 표현 활동 위주의 수업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윤 교사의 사례를 보면, 윤 교사는 대학 수업을 통해 역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려는 문제의식을 키울 수는 있었으나 자신의 문제의식을 반영해 역사를 가르치는 데 필요한 지식으로 구성하는 경험은 거의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역사교사를 역사교육 목적 설정의 일 주체로 인정하고 (예비) 역사교사가 자신이 생각하는 역사교육의 목적을 분명히 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역사교사 양성 또는 재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은 역사교사들이 자신의 의도에 걸맞은 역사수업의 내용과 방법을 선정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개별 차시 수업에서도 자신의 역사교육적 의도를 반영하고 성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 朝鮮前期 遞兒職의 受職과 役割 - 申幼兒
1. 序言
2. 遞兒受職의 節次와 方法
3. 遞兒職의 機能과 役割
4. 結語
조선왕조는 집권관료제국가로서 관료에게 科田과 祿俸을 주어 두텁게 대우하였다. 과전의 지급 대상은 초기에는 職官과 散官을 아울렀으나, 세조 12년(1466)에 직전법을 실시하면서 그 대상이 正職에 있는 관료만으로 제한되었고, 녹봉은 본시 현직에 복무하고 있는 관리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국가에서 부여하는 직역을 담당하고 있는 모든 관인계층에게 이러한 보상이 지급된 것은 아니었다. 職役에 종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시로 녹봉을 받지 못하는 계층도 있었다. 番次에 따라 輪次服務하는 군사와 잡직, 정4품 이하의 내시직, 그리고 하급 실무직 또는 기술직 가운데 前銜仍仕者는 정직과 마찬가지로 직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常祿을 받지 못하였다. 체아직은 이처럼 常祿이 없는 관인 및 군사, 잡직에게 윤차로 수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녹봉의 재원이 확보되어 있는 관직의 窠闕을 필요한 관청에서 借用할 수 있도록 한 관제운용의 한 방식이었다. 지금까지 체아직에 관한 연구는 체아직이 녹봉을 돌아가며 받는 직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고려 성중관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파악한 입장과 權務官祿과 유사한 녹제의 일환으로 이해하는 입장이 있었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체아직이 녹봉을 輪次受祿하는 임시직에 가까운 직종으로서의 특성을 가진다는 것은 밝혀졌으나, 이렇게만 이해하여서는 『경국대전』과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체아직과 관련된 자료를 그 본의에 맞게 해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체아직을 체계에 맞게 분류하여 연구하기도 어렵다. 체아직은 해당 관청의 구성원 중 본래 常祿이 보장되지 않은 관직이 있는 경우 해당 관청에 체아직을 몇 직 설치하여 이를 통해 돌아가며 수록하게 하기도 하였고, 부족할 경우 녹봉의 재원이 확보되어 있는 官職窠闕의 직함을 필요한 관청에서 빌어다 쓰되, 1개의 직함을 2~6개월 동안 체아직으로 보유하고 있으면서 해당 체아직의 품계에 따른 녹봉을 받도록 하는 것이므로 이를 그 수직대상의 소속을 기준으로 삼아 동반체아, 서반체아로 구분하거나 체아직으로 활용된 직(대개 군직) 자체를 기준으로 삼아 동반과 서반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보다는 체아직이 常祿을 보장받지 못하는 직에 대한 科祿의 한 방식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그 수직대상을 去官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적당하다. 체아직의 의미와 운영 방식을 실제에 가깝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녹봉의 재원이 확보된 직으로서 그 수직자가 정해지지 않은 직이면 어떤 직이든 그 직을 체아직으로 활용할 수 있었고, 이러한 체아직을 통한 給祿은 직무에 종사하면서도 녹봉이 보장되지 않은 관리나 군사, 잡직에 대한 일반적인 科祿 방식이었음을 알 필요가 있다. 체아직은 윤차로 受職․受祿한다는 점에서 관직의 부족현상을 완화시키고 국가재정을 절감하는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조선왕조가 체아직을 설치․운영한 것은 고려말 첨설직 등 허직을 증설하여 관직과 녹봉의 부족 현상을 해소하고자 하였던 것에서 한층 진전된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常勤하지 않고 당번 때에만 복무하는 하급 관리나 군사, 잡직, 前銜仍仕者에게도 微祿이나마 윤차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조선정부가 직무수행에 대한 보상 원칙을 관철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散官 역시 체아직을 통해 受祿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직전법 시행 이후에도 散官을 관인 계층의 범주에 포함시켜 대우하였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체아수직의 절차로써 도목정사와 체아직을 받기 위해 적용되었던 기준을 살펴봄으로써 체아직 운영 원칙을 밝히고, 조선왕조의 관제 운영 체계 속에서 체아직이 수행하였던 역할과 기능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체아직이 실제로 어떤 직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고, 집권관료제국가로서 조선의 면모를 새롭게 조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