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企劃論文 : ‘새로운 세계사’와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서술의 현실 - 서양근대부분을 중심으로>
● 세계사 교육: 변화의 담론과 교과서 서술의 현실 - 梁豪煥
2007교육과정개정 이후 ‘새로운 세계사’의 도입과 적용에 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긍적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에, 이를 반영한 교과서 서술이 난해해서 학생들이 이해하기 곤란하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 논문은 실제 새로운 세계사의 관점과 이론이 제대로 교과서 서술에 구현되었는가를 서양근대부분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7차교육과정기 이후 발행된 모든 고등학교 세계사교과서를 분석대상으로 하였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시도의 부분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역간 교류와 문화적 접촉에 관한 서술의 일관성과 응집성이 부족하여 적지 않은 이해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서양근대발전에 관한 서술의 흐름이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도 새로운 시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세계사 교과서의 르네상스 서술 변화와 근대 기점 문제 - 鄭美欄
본 연구는 제7차 시기, 2009 개정 시기, 2011 개정 시기 세계사 교육과정과 세계사 교과서에 나타난 르네상스 서술의 일치와 간극을 검토함으로써 ‘새로운 세계사’ 도입으로 인한 세계사 교육의 변화와 그 의미를 탐색한 시도이다. 제7차 세계사 교육과정은 르네상스가 근대 의식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진술하였고, 근대 기점으로 배치하였다.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발행된 세계사 교과서 역시 르네상스를 근대 기점으로 서술하였다. 2009 개정 시기 세계사 교육과정은 ‘새로운 세계사’를 표방하였고, 르네상스를 내용 요소에서 제외하였으며 근대의 기점을 과학 혁명으로 대체하였다. 세계사 교과서는 교육과정의 변화를 수용하여 근대의 기점을 과학 혁명으로 서술하였다. 하지만 르네상스를 제외하였던 교육과정과 달리 세계사 교과서에서 르네상스는 살아남았다. 다만 그 위치가 근대 기점이 아닌 중세 후기의 사건으로 배치되었다. 2011 개정 시기 세계사 교육과정은 르네상스를 재포함하였고,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로 설정하였다. 세계사 교과서도 교육과정의 변화를 충실히 반영하였다. 세 시기의 세계사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나타난 르네상스 서술의 변화를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특징을 찾아볼 수 있었다. 첫째, 세계사 교육과정의 르네상스 배치는 포함-제외-재포함이라는 부침이 있었다. 교육과정의 르네상스에 대한 관점은 세계사 교과서에서 르네상스의 편제 및 서술의 내용과 분량, 해석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규정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둘째, 르네상스는 교육과정에서 부침을 겪었지만 교과서에서는 계속 서술되었고, 교육과정의 규정력은 출판사의 성향에 따라 굴절되어 나타났다. 셋째, 저자의 서양사 전공 여부는 서술의 내용과 논조에 영향을 주었다. 넷째, 르네상스에 대한 교과서 서술은 대체로 핵심적인 내용을 간추려서 열거하는 방식과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보충 자료를 추가 제시하는 방식이 병행되었다. 마지막으로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근대 시기와 개념이 변화하였다. 그동안 유럽중심주의 극복의 필요성과 그 방향에 대한 논의는 어느 정도 진척되었으나 대안적인 내용 체계와 구체적 서술 내용에 대한 제안은 미진한 상황이다. 2009 개정 시기를 전후한 세계사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새로운 세계사’를 표방했고 현실적인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교류와 교역’ 중심 내용 조직의 시도와 서술 상의 한계 : 세계사 교과서 ‘신항로 개척’ 전후 서술과 관련하여 - 趙慧珍
본 연구는 ‘새로운 세계사’의 서술 원리를 도입하여 새로운 세계사 쓰기를 도모하고자 했던 교육과정 개정이 실제 교과서 서술의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검토해보는 일환으로, 그 성과와 한계를 신항로 개척 내용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7차 교육과정기까지 신항로 개척은 서구의 근대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가 성립되는 계기로 서술되어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은 유럽을 주체로 한 유럽 중심 서술의 전형이며, 따라서 2009 개정 교육과정과 2011 개정 교육과정은 ‘상호 관련성’의 원리를 도입해 이를 해소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15세기 전후 시기 유럽의 예외적 발전, 유럽이 만든 근대라는 서술 구조가 어느 정도 삭감되었다. 하지만 세계적 교역망이라는 내용 요소가 유기적으로 융합하지 못한 모습에서 적지 않은 혼란과 한계가 노정되기도 했다. 교육과정이 교과서 서술 내용의 급격한 변화를 요구할 경우 집필 상 큰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에 교육과정의 선언적 변화를 기다리기보다는, 동양사/서양사가 아닌 세계사로서의 서술에 관한 지속적인 논의와 이에 따른 구체적 서술 경험의 축적을 제안해 본다.
● ‘새로운 세계사’의 등장과 정형화된 서술 구조의 변화 : 세계사 교과서 신항로‘개척’과 ‘절대’주의를 중심으로 - 張로사
정형화되거나 신화화된 채 받아들여지는 유럽 역사가 세계사 교과서에 어떤 맥락으로 서술되어 있는지 밝혀내는 것이 유럽중심주의 극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본고는 2009개정교육과정을 전후하여 근대 국가 형성의 기원으로 서술되던 신항로개척과 절대주의 서술 구조가 어떤 변화와 한계를 드러내는지 분석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였다. 상호 교류를 반영한 2009개정교육과정에서 신항로개척은 근대 자본주의 발달의 원류로 서술되던 기존 구조가 분쇄되는 경우부터 특정 단어의 부분적인 변화만을 보이는 경우까지 교과서 별 서술의 상이함을 드러낸다. 더욱이 유럽인들에게만 ‘신’항로였던 개척 과정은 항로의 나열이나 아메리카 대륙의 침략상이 일방향의 시선으로 서술되어 있다. 또한 근대국가의 출발점인 절대주의 시대는 군주의 ‘절대성’을 중심으로 서술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서유럽 절대주의의 전형성에 대비된 동유럽의 후진성은 여전히 관철되고 있다. 세계사 교과서 서술은 다양한 역사적 해석을 제공하기보다, 그럴듯한 인과적·계기적 서술을 통해 설명력이 높은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정형화된 서술 구조의 전환을 위해서는 교육과정 ‘개정’을 통한 변화보다, 역사에서 신화화된 과거부터 낯설게,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대안적인 여러 스토리아크들을 학생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교사는 이를 활용하여 학생들이 단일한 목소리의 과거에서 벗어나 역사 해석의 다양성과 잠정성을 읽어내며 스스로 오늘날의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역사 수업에서 안내할 필요가 있다.
● ‘새로운 세계사’와 전통적 서술 사이에서 : 산업 혁명에 대한 세계사 교과서 서술을 중심으로 - 李少恩
본 연구는 최근 개정된 세계사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산업 혁명을 다룰 때 ‘새로운 세계사’의 시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분석하고자 했다. 7차 교육과정, 2009, 2011 교육과정문서 및 교과서를 비교·검토한 결과, 교육과정 문서에는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적 서사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 반영되어 있으나, 이러한 노력이 실질적인 교과서 서술의 변화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09, 2011 교육과정 문서의 경우, 산업 혁명 발발의 유럽적 조건과 배경을 강조하는 대신 산업혁명의 과정과 결과를 서술하는 데 더 많은 비중을 부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산업 혁명 대신 ‘산업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산업 혁명을 보다 점진적이고 보편적이며 영국 외 지역에서도 일반화할 수 있는 경험으로 인식하고자 했다. 그렇지만 두 차례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세계사 교과서는 7차 교육과정이 강조하는 유럽중심주의적 서술의 많은 부분을 답습하고 있다. 산업 혁명이 신항로 개척 이후 유럽의 내적 진화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였다는 서사가 반복되고 있으며, 산업혁명에 대한 영국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문화적·제도적 해석이 남아있다. 부분적으로 산업 혁명을 이끌어 냈던 외재적인 요인을 제시하거나 영국 외 다른 지역의 사례를 제시하는 등 서구중심적 해석을 배제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영국 중심의 산업혁명 상이 고수되고 있다.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논의가 교과서 서술까지 이어지지 않은 데에는 다양한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새로운 세계사’ 논의를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한 교과서 제작 과정과 교과서가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 위치, 비교사적 관점을 잘 담아내지 못하는 내용 조직 방법 등도 한계로 작용한다. 앞으로 ‘새로운 세계사’의 문제의식을 충실하게 구현한 교과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학계 내의 논의를 정돈하는 동시에 교과서의 특성에 대해서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 세계사 교과의 ‘시민 혁명’ 서술과 정형화된 근대 - 高翰奭
본 연구에서는 근대 사회의 정치적 출발점으로 언급되는 시민 혁명이 세계사 교과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검토하였다. 2000년대 이후 세계사 교과는 ‘새로운 세계사’ 담론의 확장과 전통적인 서사 구조 사이의 논쟁 속에서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사 교육과정 내에서 '시민 혁명'의 위상은 단원 편제상으로나 내용면에서 확고하며, 영국, 미국, 프랑스에서의 시민 혁명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해석이 고수되었다. 교과서 서술 역시 큰 변화 없이 기존의 내용을 답습해왔다. 복잡한 시민 혁명의 과정을 2-6페이지라는 한정된 분량 안에 담아내면서 서술이 지나치게 압축적이게 되며,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 오류에 가까운 설명도 확인된다. 특히 교과서는 혁명의 배경과 결과를 집중적으로 설명하는데, ????서양사개론????에서 제시된 해석을 전범처럼 받아들이면서도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는 학생들이 근대 시민 사회의 형성 과정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드는 한계가 있다. 이처럼 세계사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 나타나는 정형화된 시민 혁명 서술은 학계에서 정설이 가지는 위상과 더불어,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이 세계사 교과의 중요한 주제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특히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새로운 세계사’ 담론에서도 시민 혁명을 유럽에서 일어난 특수한 사건으로 인정하는데, 이로 인해 시민 혁명에 대한 서술은 세계사 교육을 둘러싼 논쟁에 휘말리지 않은 채 기존의 서술을 답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현행 세계사 교과에서 유럽중심주의 담론의 극복을 위해서는 절대화된 시민 혁명의 상을 변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대 세계의 형성 과정을 소개한다는 세계사 교과의 목표가 확고한 이상, 근대 이후 세계사의 유럽중심성과 시민 혁명의 위상은 변화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역사로서의 ‘서양사’ 혹은 주제사로서의 ‘민주주의의 역사’ 등 현행 세계사 교과를 대체하는 새로운 방향의 역사 서술 방식을 고민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論文>
● ‘근대 전환기’ 어떻게 탐구하게 할 것인가? : 국민국가 건설 운동을 중심으로 - 姜鮮珠
본 논문에서는 학생들에게 근대 전환기를 국민국가 건설 운동/민족운동을 중심으로 탐구하게 할 때, ‘행위 주체’가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이 처했던 ‘내부의 조건’과 ‘외부와의 관계’를 함께 검토하게 하고, 근대 전환기에 상호 관계를 맺었던 나라들이 서로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고, 그러한 인식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게 하며, 그리고 그 시기 사건들을 국가의 경계를 넘어 상호연결시켜 분석하고 평가하게 하고, 그리고 그 시기 들어진 근대적 제도, 가치, 사상, 문화 등에서 ‘혼합’과 ‘전유’의 측면을 보게 하라고 제안했다. 이 논문에서 제안한 ‘검토해야 할 측면’은 수정과 변형 가능한 틀이다. 지역이나 국가마다 더 강조되어 살펴봐야 할 국면도 있고,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본 논문에서 제안한 것을 넘어 다른 측면을 검토하게 할 수도 있다.
● 1930년대 안재홍의 조선학연구에서 근대정체성 서사와 다산 정약용 - 李智媛
안재홍은 1930년대 중반 정치적 차선책으로서 ‘문화운동’에 의미를 두고 조선학연구운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다산 정약용에 주목하였다. 안재홍에게 있어서 조선학은 ‘자아창건’?근대적인 정체성(modern identity) 만들기 서사를 갖는 근대 계몽의 담론이었고, 다산은 그러한 역사적 의의를 부각시키는 의도 속에서 탐구와 기억의 대상이었다. 이때 다산은 변법자강의 진보주의적 사상가로서 보수적인 주자학적 유학과 대립되며 주체적인 자아를 추구하는 근대 개혁의 내재적 원형으로 배치되었다. 그것은 조선후기 이래 한국 사회의 ‘민’ 중심의 개혁 전통을 복원하는 것이었는데, 다산은 군민일체의 정치개혁 구도 속에서 농민 중심의 토지개혁, 사회개혁론을 집대성한 인물이었다. 다산을 변법자강의 진보주의자, 국가적 사회민주주의자로 명명한 것은 안재홍이 지향한 근대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역사적으로 연계시킨 것이었다. 안재홍의 근대 개혁의 서사는 조선민족의 독자적인 ‘國家’ 주체의 개혁을 실학이라는 ‘전통’에서 호명하였다. 실학은 ‘國家’라는 실체를 전제로 ‘君民一體論’의 입장에서 국가단위의 개혁을 추구하는 사상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일제의 파시즘체제가 강화되는 시점에서 일본이라는 ‘국가’를 부정하며 조선민족의 독자적인 국가수립을 지향할 때, 자주적인 근대 국가의 내재적·자력적 사상 기반을 한국형 근대국가 지향 사상인 실학에서 찾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민족의 정체성이 ‘국가’ 단위로 표현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민족 정체성이 ‘국가(nation state)’ 가 아닌 ‘종족(ethnicity)’에 국한될 경우 일본 국가 내의 지역문화, 국민문화의 일환으로 흡수되는 것을 가능하게 할 속성이 있다. 즉 조선인의 독자적 정치력과 견제력이 없는 가운데 ‘민족 표상’은 일본 국가의 ‘국민 표상’으로 흡수되는 것에 저항하기 어려웠다. 당시 일제가 조선 민족문화에 대한 파시즘적인 연구와 보급이 확대되는 식민지 문화지형에서 안재홍이 ‘國家’라는 실체를 전제로 한 근대 개혁사상가로서 다산을 선택하고 해석한 것은 독자적인 근대국가 지향의 저항성과 정체성의 서사를 웅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은 과거의 흔적이자 결과물들이기에 전통을 전승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의 집단적 정체성의 뿌리이다. 근대는 일체의 ‘과거의 것=전통’을 타자화함으로써 진보한다는 명제 속에는 과거와의 단절을 요구하는 속성이 있다. 그러나 근대 국민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보이고, 대내적으로 국민을 결집시키고 동원하기 위하여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전통’은 유용하였다. 역설적으로 ‘전통’은 근대의 필요에 의해서 더 많이 호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근대를 만들고자 하는가에 따라 호명되고 기억되는 ‘전통’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한국근대사에서 전통들은 그러한 구도 속에서 선택되고 정형화되어 전승된 것들이다. 1930년대 안재홍은 조선학연구운동에서 다산 정약용을 호명하여 식민지 근대사회에서 민세주의적 근대 정체성을 ‘전통’으로부터 만들고 확충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안재홍은 독자적인 근대국가 지향의 저항성과 정체성의 서사를 계몽하고 웅변하는데 유의미한 ‘전통’으로서 정약용을 재현하였던 것이다. 이는 ‘전통’을 통해 근대정체성을 형성하고자 하였던 한국 근대문화사의 한 장면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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