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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敎育 155輯 (2020.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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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文

 

총괄 개념의 특징과 역사 학습에서 그 역할

   千  世  彬  …  1


이 글에서 나는 먼저 역사 분야에 총괄 개념을 도입한 W. H. 월시부터 최근 쿠카넨까지, 역사철학자들의 논의를 바탕으로 총괄 개념의 특성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요컨대, 총괄 개념은 과거의 실재에 상응하지는 않지만, 그 아래에 포괄된 사건들을 해명하기 위해 구성되는 개념이다. 총괄 개념은 해석적 주관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단순한 명목상 개념이나 일반 범주 개념과는 다른 독특한 역사서술적 특징을 가진 개념이다. 또한, 나는 역사교육 연구에서 어떻게 총괄 개념을 전제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총괄 개념은 역사가의 사고 과정을 보여주는 개념으로 접근되거나, 학생들이 시간 척도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표지어로 접근된다. 혹은, 이 글에 특히 중요하게는, 과거로부터 의미 있는 내러티브를 구성할 때 학생들이 유의해야 할 표현으로 생각된다. 총괄 개념이 다양하게 이해되는 이유는 역사 학습에서 실질 지식 및 절차 지식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나는 총괄 개념이 실질 지식과 절차 지식 사이의 '회색 지대'를 차지한다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총괄 개념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학생들이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교한 이해를 바탕으로 '과거의 그림'을 그리기 위한 역사적 문해력을 함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역사 이야기꾼’에서 ‘민주시민 교육자’로: 한 역사교사의 교사 정체성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珍  婀  …  41


‘교사 정체성’은 교사로서의 직무와 역할에 관한 교사 자신의 인식을 일컫는 말로, 이는 교사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본 연구는 한 역사교사의 교사 정체성이 형성되고 변화해 가는 과정을 살펴본 내러티브 탐구로, 학교생활 및 역사수업의 경험에 관해 교사 스스로가 말하는 이야기가 연구 텍스트의 바탕이 되었다. 연구 참여자인 김철수 선생님은 사범대를 졸업하여 처음 학교생활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유려한 말솜씨로 강의를 펼치는 역사 이야기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역사 내용 지식을 조직적이고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의 학교에서 강의식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서 공교육의 목적을 다시 묻고 공교육 교사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성찰하게 되었고, 이에 내용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의식 수업에 회의감을 느끼며 새로운 수업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공교육 역사교사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민주시민 교육자로 정의하게 되면서, 선생님은 민주시민 교육에 맞는 수업을 실천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역사 논쟁 수업을 기획하여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김철수 선생님의 내러티브를 통해 교사의 정체성이 수업실천의 근원이 된다는 점을 논의하였다. 특히 위로부터의 교육정책이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개별 교사의 수업실천에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교육정책을 활용하는 것 역시 교사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향후 교사교육은 교사로서의 경험의 범주를 확장시켜 줌으로써, 교사 정체성을 구성하고 변화·발전시키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항일 무장 독립 투쟁사 학습에 대한 고등학생의 인식과 교수 방향

   崔  玹  瑀  …  77


본 논문에서는 항일 무장 독립 투쟁사 수업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해당 부분에 대한 고등학생의 인식을 고찰하고 이 주제에 관한 교수 방향을 모색하였다. 봉오동 전투에서 한국 광복군의 활동으로까지 이어지는 항일 무장 독립 투쟁의 서술구조는 제3차 교육과정에서 자리잡은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학생은 항일 무장 독립 투쟁의 개념을 광의로 파악하여 의병ㆍ의열 활동까지 포괄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학생들은 항일 무장 독립 투쟁이 갖는 학습의 중요성은 공감하면서도 해당 주제에 포함된 여러 단체와 사건 등으로 인해 학습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학생들은 항일 무장 독립 투쟁 수업에서 방대한 내용을 배우지만 해당 주제의 역사적 의미와 영향은 파악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은 항일 무장 독립 투쟁에 투신한 다양한 인물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해당 주제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일제 식민지배체제의 실상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항일 무장 독립 단체의 활동 면에서 학생들이 제기한 의문 중에서 주목할 점은 모든 수업과 교과서 서술이 독립군의 승전만을 다룬다는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교사와 교과서가 의도적으로 항일 무장 독립 투쟁사를 聖典化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였다. 2015개정 교육과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해당 부분은 탐구 활동 등의 측면에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1970년대에 자리잡은 항일 무장 독립 투쟁사 서술의 기본 구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항일 무장 독립 투쟁을 소재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ㆍ드라마의 내용과 그를 둘러싼 논쟁은 학생들의 역사 인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항일 무장 독립 투쟁의 역사교육적 가치를 재고하기 위해서는 독립군의 시련과 구체적인 생활상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독립군이 남긴 다양한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그들의 삶을 추체험하는 과정은 항일 무장 독립 투쟁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진상을 직시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항일 무장 독립 투쟁사 학습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은, 일부 기념비적인 전승 사례와 여러 독립군 단체를 제시하여 일제에 부단히 저항한 한민족의 자긍심을 강조하는 한국사 교육의 현실을 되짚어보게 한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한인들이 어떤 이유로 일상적인 삶을 포기하고 항일 무장 독립 투쟁에 투신하게 되었는지, 그들의 활동은 일제와 식민지 조선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학생들과 함께 탐구하고 고민하는 과정은 역사 학습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 현대사 교육과정의 변천: 고등학교 ‘한국사’(‘국사’) 과목을 중심으로

   金  成  子  …  113


이 글에서는 해방 이후 ‘한국사’(‘국사’) 과목의 현대사 교육과정의 변천을 현대사의 기점 및 하한의 변화, 현대사 교육 목표의 특징, 현대사 단원 내용의 구성 변화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이 글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은 교수요목기부터 2018 개정 교육과정까지의 고등학교 ‘한국사’(제7차 교육과정 이전 ‘국사’) 교육과정이다. 당대사를 지칭하는 용어로는 교수요목기에는 ‘최근세’가, 제1차 교육과정이후에는 ‘현대’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현대사의 기점은 세 차례에 걸쳐 변화하였다. 교수요목기에는 1864년이, 제1·2차 교육과정에서는 1910년 일제 강점이, 제3차 교육과정부터는 1945년 해방이 현재의 기점이 되고 있다. 현대사의 하한과 관련하여 교과서에서는 제2,3차 교육과정 시기에는 현정부의 정책까지, 제4차 교육과정 이후에는 현정부의 국정지표까지 서술되고 있다. 현대사 단원의 목표 진술에 있어 제3차 교육과정부터 제5차 교육과정까지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이해, 반공 이데올로기의 강화, 민족 발전을 위한 노력이 강조되어 왔으나, 제6차 교육과정 이후에는 이러한 이념성이 약화되고, 현대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현재의 문제 해결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강조되어 왔다. 현대사 내용 구성은 정치사와 경제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정치적·사회적 요구, 때로는 역사연구의 진전에 따라 내용이 추가되는 모습을 보여 왔으며, 시기에 따라 현대사에 대한 관점과 해석, 혹은 역사인식에 있어 변화가 나타났다.



‘중국과 동아’: 108과강에 따른 대만의 고등학교 『역사2』 교과서 비교분석

   金    利  …  149


대만의 108과강 고등학교 역사 ‘중국과 동아’ 분역의 특징이 교과서에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필자는 남일판과 삼민판 고중 『역사2』 교과서를 분석했다. ‘동아사의 맥락에서 본 중국사’를 구현하기 위해 삼민판의 52%, 남일판의 42%가 동아사를 새로 추가하거나 중국사와 통합하여 서술했다. ‘인구이동과 교류’에서 전근대는 두 판본 모두 중국의 경우만을 서술했지만, 근현대는 중국과 동아의 경우를 아울러 설명했다. 남일판은 특히 근대 이후 중국과 일본·조선의 인구이동을 체계적으로 설명함으로써 108과강의 취지를 잘 반영했을 뿐 아니라, 기후변화와 인구이동 등 대만 역사학계의 최근 관점과 전망도 잘 반영했다. ‘인민을 주체로 한 관점’은 전통 왕조에서 존재하던 다양한 사회조직을 설명함으로써, ‘인민’의 범주와 생활모습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108과강 고중 『역사2』는 동아사가 추가됨으로써 중국사 분량이 역대 최소치로 축소되었다. 국민당 인사들의 주장처럼 역사교육에서 중국사 축소가 ‘탈중국화’를 의미한다면, 민진당 차이잉원 정부의 ‘탈중국화’는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려시대 老人賜設儀의 분석과 그 상징 의미

   韓  政  洙  …  187


고려시대 노인사설의에 대한 연구가 일차 이루어졌지만 그 명칭이나 설행 시기, 의례 절차, 의례 대상과 의례에 반영된 상징 요소 등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미흡한 면이 있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노인사설의에 대해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노인사설의에서는 天子儀制에 해당하는 요소를 반영하면서 의례 내용을 궁궐에서 지방으로 확대하였다. 궁궐의 경우는 대관전-합문-의봉문-구정․동락정-태정문-대관전으로 이어지는 환류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노인에 대한 敬老와 효자순손 등에 대한 포상 차원의 참여, 환과고독 등에 대한 진휼이 있었다. 의례 내면에는 지배 합리화 과정을 통해 왕권의 위상을 높이거나 위계질서 강화 등의 목적이 있었으나 국왕의 덕으로 80세 이상 노인으로부터 독폐질자 등에 이르기까지 은택을 내리는 의례로서 상징성을 띠었다. 이에 노인사설의는 덕치를 상징하는 고려 특유의 의례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노인사설의는 양로와 효제장려, 진휼을 통한 민본 실현이라는 면에서 與民同樂을 상징화할 수 있는 의례가 될 수 있었다 본다.

 

 

1920년대 전반 군산지역의 노동운동: ‘군산노동연맹회’와 항만하역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具  姬  眞  …  217


이 논문에서는 한말·일제강점 이후부터 1925년 말까지의 군산지역 노동운동에 대해서 항만하역 노동운동과 군산노동연맹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군산지역에서는 한말·일제강점초에 이미 노동조합들이 만들어졌는데, 이 조합들은 주로 일본 선박회사들이 고용한 하역 청부업자들에게 선내작업 노동자들을 제공하는 노무 공급회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검찰이나 십장이 중심이 되는 조합으로 일인들은 이들을 통해서 노동을 통제하고 관리하려 했다. 그런데 3·1운동 이후 군산지역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노동조합들이 새롭게 조직되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성격이나 활동의 측면에서도 변화와 발전을 보여주었다. 1920년대 전반 군산의 노동운동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많은 노동조합들이 설립되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미곡상, 객주들이 중심이 되었던 군산노동공제회는 지금까지 잡역부로 불리웠던 항구의 연안작업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군산 최대의 노동조합으로 성장했다. 군산노동회는 검찰, 십장제도를 철폐하고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혁신노동조합을 조직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군산노동연맹회는 보수, 혁신 노동조합들이 연합하여 조직한 최초의 지역 단위 노동연맹체였다. 또한 혁신세력의 꾸준한 성장에 힘입어 군산철도노동회가 명실상부한 혁신노동조합으로 조직될 수 있었다. 군산지역 물류유통의 근간이 되는 군산선으로 운반되는 화물의 하역을 혁신노동조합인 철도노동회가 담당했으며, 이러한 힘에 기반해서 군산운송업자 조합에 대항한 파업에서도 승리하여 임금인상을 쟁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치열하게 이뤄낸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대립과 갈등의 해소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군산노동공제회와 군산노동회의 갈등, 군산철도노동회와 동신조합의 갈등이 집약적으로 보여주듯이 동일부문 노동조합 사이의 일감을 둘러싼 대립, 보수와 혁신노동조합 지도자들 사이의 대립이 갈등 일로로 치달았다. 동일부문 노동조합 사이의 대립은 필연적으로 가격경쟁으로 인한 임금삭감과 노동조건의 악화를 초래했다. 더구나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고 유지하는 것은 일제의 노동운동 통제방식이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들은 1920년대 후반 민족적 단일전선이 추구되는 속에서 해결방법이 모색되어갔다. 특히 1927년 말의 옥구농민항쟁은 군산노동운동계에 반성과 혁신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批評論文

 

조선전기 상업사의 이해 시각

   朴  平  植  …  257


본고는 한국사학계와 세계 역사학계의 조선전기 상업사 이해 체계에 대한 비판과 문제의식 속에서 작성되었다. 한국사에서 15~16세기는 상업이 부진하고 침체하여, 이른바 ‘자급자족’의 자연경제가 펼쳐졌던 시기였을까? 더욱이 당시 세계사 차원에서 이른바 ‘상업의 시대’가 발흥하였던 시기에, 조선 사회는 이 같은 흐름에서 소외되거나 아니면 스스로 이를 거부하면서, 전형적인 유교 국가로서 상공업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농업사회의 면모를 이 시기 내내 고수하고 있었을까? 고려 말 이래 조선 상업은 국초의 유교적 재편성 과정을 거쳐 그 내적인 변동과 발전을 추진하는 가운데, 그리고 중국과 일본 등 주변 나라들과의 접촉과 교역을 통해서 그 변화를 지속하고 있었다. 특히 16세기에 들어서는 그 발달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이 시기 도성 상업의 확대와 발전, 비시전계 사상인의 등장과 ‘난전’으로서 시전 압박, 지방 장시의 출현과 전국 확산, 교환수단으로서 준명목화폐인 추포의 통용과 ‘추포경제’의 진전, 그리고 중국의 사치품과 일본산 은을 활용하여 양국을 잇는 중계무역을 통해 대외무역에 적극 나서고 있던 조선 상인들의 모습 등은 모두 한국 또는 세계 역사학계의 평가와는 전혀 다른 양상들이었다. 당대 동아시아를 무대로 펼쳐지던 상업의 시대에 조선 상업과 상인들 역시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유교 국가이자 농업사회인 조선에서 상업은 (Ⅰ) ‘무본억말’ 단계 → (Ⅱ) ‘이말보본’ 단계 → (Ⅲ) ‘상공업입국’의 단계로 역사적인 진행을 하였으며, 그 중 15~16세기의 상업은 (Ⅰ)단계 조선 상업의 전형이자 장차 (Ⅱ)단계로 전환되는 과도의 시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書 評

 

Hazel V. Carby, Imperial Intimacies: A Tale of Two Islands (Verso, 2019)

   沈  恩  慶  …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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