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 文 … i
企劃論文: 혁명 이후의 보수반동, 위기인가 기회인가?
문화대혁명, 진보인가 반동인가? - 베이징 초기 홍위병 운동의 쟁점에 대한 재검토를 중심으로 -
成 謹 濟 … 1
이 글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정치적 키워드를 통해 문화대혁명 시기의 쟁점과 갈등이 지니고 있는 현대성과 보편성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해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 이 글은 먼저 문화대혁명 초기 홍위병 운동을 둘러싼 쟁점에 초점을 맞추되, 최대한 당시 사회적 갈등의 구체적인 맥락화가 가능하도록 북경이라는 제한된 지역으로 연구 범위를 좁히고자 한다. 나아가 이 연구는 이 일련의 구체적 콘텍스트들을 재해석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핵심적 사회적 담론이라 할 수 있는 ‘공정-정의’, ‘차별-혐오’의 담론에 특별히 주목한다. 필자는 이 담론들을 일련의 민주화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일종의 ‘포스트 혁명 담론’으로 파악한다. 문화대혁명을 재인식하기 위해 ‘포스트 혁명 담론’을 방법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문화대혁명 담론 역시 1949년의 사회주의 혁명이 이룩한 성과에 대한 일종의 ‘포스트 혁명 담론’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사회 운동이 지향했던 바는 비교적 명확하다. 그것은 모든 차별을 철폐하고 공정한 자원의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정의로운 제도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경로를 밟아 나갔고, 한국은 민주화 운동이라는 상이한 경로를 밟아왔다. 양자 모두 성과가 없지 않았지만, 두 경우 모두 한계 역시 뚜렷했다. 이 한계 지점에서 분출된 사회적 반응들의 의미는 어떻게 비교되고 평가되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시도는 결코 1966년의 중국과 2021년의 한국을 섣불리 동질화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혁명과 반동을 가르는 이데올로기적 잣대를 서로에게 들이대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무엇이 혁명적인 것이고 무엇이 반동인지를 선명하게 가르기 쉽지 않은 당혹스러운 조건 속에서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을 새로운 해석을 위한 상호 참조체계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을 탐문해 보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일 뿐이다.
군부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미얀마 - 민간‑군부관계로 본 쿠데타의 역동성 -
張 准 榮 … 29
이 글의 목적은 2021년 2월 1일 발생한 미얀마 군부의 정치개입 배경을 군 내외적 환경에 따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군부와 국민 간 상호 경쟁과 갈등의 역학 구도를 정립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민주체제에서 민간-군부 관계는 민간정부가 군부의 자율성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미얀마와 같은 선거민주주의 체제이면서 군부 통치의 유산이 여전히 작동하는 사회에서 단시일에 민간이 군부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 민간-군부 관계는 정치적 영합의 결과가 아닌 상대적이고 진행 중인 과정의 관계로 설정한다.
구체적 분석 틀은 구조적(structure) 접근과 행위자(agency) 중심 접근이다. 구조적 접근은 수직적 통제(vertical control)와 수평적 통제(horizontal control)로 구분한다. 전자는 행정부, 입법부 등 권력을 보유한 민간과 군부 간 관계를 분석하고, 후자는 정부 외 영역, 이를테면 정당, 시민사회, 언론 등이 군부를 통제하려는 정부의 제도나 정책에 대한 지지 여부 등을 평가한다. 행위자 중심 접근은 군 내부 문제로서 주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는 군 내부의 자기 통제(self control) 의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 글은 쿠데타라는 결과를 바탕으로 한 과거 사실의 조합과 해석으로서 어쩌면 쿠데타의 당위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미얀마 내부적으로 고착화의 과정을 겪은 민간-군부 관계를 이해한다면, 쿠데타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동인과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의 해석, 이를 바탕으로 한 정치발전의 양상을 가늠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카자크 방데(Cossack Vendée)”? - 러시아 혁명기 남부 러시아의 反혁명은 왜 일어났는가? -
具 滋 正 … 65
본 연구는 러시아 혁명기 反혁명 운동의 근거지로 이른바 “카자크 방데”의 중추였던 남부 러시아 쿠반 카자크 보이스코(Voisko)를 중심으로 “카자크들이 왜 무기를 들게 되었는가?”의 문제에 대해 검토하려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혁명을 기치로 혁명의 이름 아래 혁명 수행을 위해 일어난 혁명적 反혁명,” “카자크 방데”의 모순적 출현 배경과 초기 등장 과정을, 20세기 초반 쿠반 지방에서 격화하던 카자크와 이노고로드니예(非카자크 농민) 간 긴장과 갈등 상황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그 결과물인 1917년 7월 쿠반 지역의 이중권력 출현과 러시아 내전 발발의 과정과 배경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혁명적 反혁명”으로서의 “카자크 방데”의 모순이 상징하는 러시아 혁명의 성격 규정에 대해서도 나름의 문제 제기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
論 文
<범금팔조> 비판 과정의 학습 내용 구조화 가능성
金 聖 玹 … 99
본고는 <범금팔조>를 사료비판의 과정에 주목한 학습 내용으로 구조화하여 보고,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사고해 보고 읽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례를 제시해 보고자 한 글이다. 사료를 활용한 역사수업은 일찍부터 주목받아 왔고, 7차 국사 교과서 이후 <범금팔조>는 탐구활동의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사료를 활용한 탐구를 통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증진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에도 불구하고, <범금팔조>를 활용한 사료학습은 여전히 교과서에 서술되어 오던 내용을 습득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사료를 읽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사료를 읽고 생각을 유도하는 탐구과제를 제시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범금팔조> 또한 학생들이 비판적 읽기를 경험하는 데 활용될 필요가 있다. 특히 <범금팔조>는 기록된 것과 실제로 일어난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역사적 사실이 지니는 특징을 학생들이 포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사료비판의 과정에 주목한 <범금팔조> 학습은, 학생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료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고, 텍스트에 나타난 내용에 대한 신빙성 문제나 저자의 관점, 이에 대해 역사가의 해석이 개입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생의 ‘학생 주도 역사 수업 경험’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宋 秀 娟 … 125
본 연구는 고등학생의 학생 주도형 역사 수업 경험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이다. 학생 주도형 역사 수업이란 학생 주도성에 기초한 역사 수업으로, 수업 목표와 학습 계획 수립부터 수업 내용과 탐구 계획 결정, 운영 및 평가 등 수업의 전 과정에서 학생이 주체가 되도록 하는 역사 수업을 말한다. 탐구 결과 고등학생들은 학생 주도형 역사 수업 경험을 통해 학생 주도성이 함양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역사관을 구축했고, 진로를 구체화했으며, 자아 개념을 성숙시켰다. 학생 주도성에 기반한 학생 주도형 역사 수업은 참여자 간의 신뢰에 기반하여 공공선의 지향을 통해 교육과 삶 전반으로 확장된 숙고를 독려하는 민주적 역사 수업 공간을 구성하고 있었다. 특히 발제와 토론으로 구성된 역사 탐구 활동은 학생들에게 역사적 말하기에 대한 자신감, 역사를 통해 만나는 인간에 대한 애착을 길러냈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은 성적 여부와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역사 실천 활동을 전개하는 데까지 나아갔으며, 역사 속 과거와 현재의 삶을 연결하고 있었다. 본 연구는 연구 참여자인 학생들의 수업 경험에 대한 심도 있는 질적 연구로 진행되어, 역사 수업이 교과 영역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삶의 영역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학생 주도형 역사 수업이 학생들을 성숙하고 능동적인 시민을 키워내는 데 주효한 수업 활동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학생 주도형 역사 수업이 일반화되기에는 제약이 많다. 연구 참여자들은 현행 고등학교의 역사교육 환경에서는 학생의 부담이 크게 가중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개정되는 역사 교육과정이 학생 주도형 역사 수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교육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민주 시민을 육성하기 위해서, 교육은 모든 학생들의 개별성을 존중하며, 그들 각자의 잠재력을 포착하고 비계를 제공하도록 역할해야 한다. 고등학교 역사 교육은 대학 입시의 도구가 아니다.
박물관의 감정적 전시, 방문객의 감정이입, 그리고 역사교육과 유산교육
姜 鮮 珠 … 181
박물관은 감정의 장소이며 감정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기억의 붐이후 박물관이 민족주의 서사에 균열을 일으키는 개인의 이야기와 유산들로 과거를 재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박물관이 ‘감정으로의 전환(emotional turn)’이라는 패러다임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고통과 트라우마적 과거를 재현하는데 감정적 전시를 확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부 박물관 연구자와 종사자들은 박물관이 민감한 과거나 어려운 과거에 대한 감정적 전시를 통해 사회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정적 전시가 방문객의 감정이입과 공감을 불러일으켜 그들이 사회를 보는 시각이나 견해는 물론 사회적 행위를 변화시키는 동인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민감한 과거를 재현한 감정적 전시 기법을 살펴보고 방문객의 감정적 반응, 감정이입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검토 분석했다. 그 결과 연구들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제시했다. 박물관에서 다수의 방문객은 감정적 전시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며 감정적으로 반응하더라도 시각이나 견해의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소수였지만 과거의 사건이나 관련된 피해자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시각이나 견해의 변형을 경험한 방문객도 있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기초하여 이 글에서는 박물관에서 교육에서 고려해야 할 점을 제시했다. 이 글에서는 학습자에게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학습자의 습관화된 인지적이고 감정적 반응에 도전하고 그들의 시각이나 견해에 대해 스스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구조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박물관에서 역사교육과 유산교육을 이론적으로 연구하고 실천 가능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제국 말기 玄采의 역사교육론 - 한국사 교육을 통한 ‘復我舊日文化’ -
鄭 光 弼 … 215
본고에서는 『중등교과 동국사략』 自序 소재 구절인 ‘復我舊日文化’를 중심으로 대한제국 말기 현채의 역사교육론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우선, ‘復我舊日文化’는 현채의 역사교육의 목적이었다. 현채는 우리의 문화가 과거에는 일본에 앞섰지만 점차 쇠락하여 일본의 수준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우리 문화의 회복을 위해 我韓史 학습을 강조하였다. 我韓史를 다룬 『유년필독』은 현채의 역사관을 엿볼 수 있는 역사교과서이다. 현채는 『유년필독』의 서술을 통해 실력으로 중국과 일본을 선도했던 우리의 과거, 높은 수준의 문화를 향유했던 우리의 과거를 부각하였다. 이와 함께 현채는 전통적인 유학적 가치에도 주목하였다. 그는 실력양성을 통해 ‘復我舊日文化’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실력양성을 위해 학문을 스스로 닦아야 함을 역설하였다. 궁극적으로 ‘復我舊日文化’는 국민의 실력을 양성하고 독립과 국권회복이라는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채가 설정한 역사교육 목적이다.
해방 이후 교육이념 정립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관계
金 鍾 俊 … 255
‘홍익인간’이 대한민국 교육이념으로 채택되기 전에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러 반론이 제기되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가치를 제한하고 파시즘적 논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대체로 ‘민주주의’라는 보편적(서구적) 가치를 우리의 처지에 맞게 (민족적으로) 변용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하기에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에 의해 ‘민주주의 민족교육론’이 제창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안호상은 민족주의의 배타성과 민주주의의 비자주성을 모두 지양해서 ‘민주주의 민족교육’으로 결합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존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들을 대부분 부정함으로써 비어 있게 된 공간을 민족, 민중, 국가로 채웠다는 점에서 파시즘적이었다. 1949년 3월 열린 민주적 민족교육연구대회 발표문들과 『민주주의 민족교육론』이란 책을 통해 교육관료 및 현장 교사들이 안호상의 ‘민주주의 민족교육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엿볼 수 있었다. 교육관료들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대립적, 모순적 개념으로 인정하면서도 두 개념의 봉합을 위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고등교육국장 사공환처럼 신채호, 안호상, 안재홍, 손진태 등의 민족주의 역사인식을 짜깁기해 ‘민주주의 민족교육’을 정당화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당대 미국식 민주주의를 도입하기 위해 신설된 사회생활과 내용이 ‘유기체적 민족주의’에 빠지는 모순도 발생했다. 현장 교사들 역시 화랑도정신, 삼일정신 계승을 내세우고 개인주의 교육과 계급적 교육을 모두 부정하며 개인이 민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안호상의) 입론에 동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주주의 교육’의 핵심이 본질적으로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미군정 교육 정책에 대한 반작용으로 과도하게 ‘민족교육’이 주창되고 있다고 진단하는 이도 일부 있었지만 소수였다. 교육전문가 오천석 역시 ‘민주주의 민족교육론’에 일관되게 반대하였다. 그는 민족주의 교육론이 사실상 파시즘적 세계관에 입각해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조화 가능성을 모색하고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우려하는 인식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書 評
샘 와인버그(정종복·박선경 역), 『내 손안에 스마트폰이 있는데 왜 역사를 배워야 할까?』, 휴머니스트, 2019
李 美 薇 …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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