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 文 … i
企劃論文: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초·중·고등학교 역사교육
4차 산업혁명 시대 역사교육의 목표와 방향
金 基 鳳 … 1
2022년 교육과정 개정에서는 이전의 개정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 번째는 디지털 이주민의 기성세대가 디지털 원주민인 미래 세대를 어떻게 교육할 수 있느냐다. 두 번째는 빅데이터가 인간의 집단기억을 초월했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집단학습을 추월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응전하는 교육과정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과거의 사례를 범례로 삼아 미래의 문제를 풀 수 없는 빠른 변화가 일어난다. 초가속 시대를 살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요청되는 역사교육은 과거에 대한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개념적 지식을 토대로 전이학습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교육에서도 10년 걸릴 4차 산업혁명을 1년 만에 성취하는 효과를 낳았다. 교실에서 교과서를 매개로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한 코로나19 상황에서 디지털 전환은 전면적으로 일어났다. 이제는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없는 ‘티핑 포인트’를 넘어섰다. 2022년 역사교육과정 개정은 교과서와 교사의 역할을 인공지능이 일정 부분 대신하고, 교실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혼합학습으로 전환하는 ‘뉴노멀’ 교육과정을 모색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 역사교육의 핵심역량과 핵심주제
黃 仁 奎 … 27
본 연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역사와 미래 교육의 방향,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강조되어야 할 역사 교육의 핵심 역량과 핵심 주제를 살펴본 것이다. 오늘날의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한 슈워브조차도 그것의 실체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리프킨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은 단지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는 견해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그 때문에 역사와 역사 교육을 포함한 학계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이 학술적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수용하기 힘들다고 해도 오늘을 살고 있는 시기는 4차 산업혁명의 도구 기술들이 상용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오늘날은 인공지능과 ICBM과 같은 지능적인 정보 기술이 사용되고 있는 4차 산업 혁명의 물결이 드세다.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역사학은 과거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1차, 3차 산업혁명을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고, 역사교육은 현재와 미래에 펼쳐질 4차 산업혁명과 미래 교육에 관심을 갖고 이뤄져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끈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도구 기술을 포함한 역사이다. 불교의 창시자 붓다도 또한 학문은 널리 배우고 뛰어난 기술로 연마되어야 한다고 하였던 바 있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1차~3차 산업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전망을 통해 4차 산업혁명과 미래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4차 산업 혁명 시기에는 인문, 특히 역사와 역사 교육은 인간 본성의 중심을 넘어서는 자연과 우주적 수준에서 연구하고 교육되어야 한다.
WEF, OECD, UNESCO, DeSeCo, P21의 제안처럼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역량 위주의 교육만을 강조하면서 더욱 중요해야 한다. 그러나 역량이 어떻게 형성되고 개발되는지, 그리고 학생 개발 과정과 역량 구축이 어떻게 관련되는지 언급하지 않는 한계들이 있다. 미래 사회의 제공에 의해 핵심 역량이 결정될 경우 역량 교육을 종속시킬 위험이 많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경계해야 한다.
역량학자 찰스 파델 등 『21세기 핵심역량』의 저자들은 지식, 스킬, 인성, 메타학습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가운데 메타학습은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지식, 스킬, 인성 등을 학습한 맥락을 넘어 광범위한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러한 메타학습을 하기 위하여 전통적 지식 기반도 필요하며, 이 지식기반이 바로 필자가 말하는 전통적인 역사지식인 핵심주제이다. 핵심 역량뿐 아니라 전통적 지식 기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지식 기반은 제가 말하는 전통적인 역사 지식인 핵심 주제이다. 역사교육은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교육 이념과 인간상에 바탕을 둔 핵심역량뿐 아니라 기존 지식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 역사인 핵심 사실도 가르쳐야 한다.
고등학생의 동아시아사 소논문 쓰기 주제에 반영된 역사에 대한 관심
金 旻 秀 … 53
이 논문은 학생들이 역사 과목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을 확인하기 위해 고등학교 동아시아사 수업에서 작성한 소논문 주제 243개를 분석한 것이다. 학생들이 작성한 소논문의 주제 설정 이유와 내용 구성을 분석해보니 학생들의 관심은 동아시아 역사 교과서의 내용을 심화시키는 것에서부터 개인적인 관심사를 반영하는 것까지 다양했는데, 이를 세 범주로 구분하였다. A 범주의 주제는 교육과정(교과서) 내용을 차용한 것이었다. B 범주의 주제는 학생들의 관심이 앞섰으나, 동아시아사 교육과정의 내용을 학습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C 범주의 주제는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것이었으나, 학생들은 이 범주의 주제를 소논문으로 작성하면서 역사학습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학생들은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탐구할 때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스스로 해당 과목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을 바탕으로 주제를 설정하고 읽기 자료로 역사 논문을 찾아서 읽고 체계를 세워서 정리하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소논문을 완성한 후, 그것을 '재미'로 평가했다. 이렇게 학생들의 관심을 교육과정과 어긋난다고 해서 배척할 것이 아니라 이를 교육과정의 내용이나 역사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수업 방식의 변화도 필요하고 역사를 탐구할 수 있는 선택과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論 文
한국 근대 사회운동의 계승관계에 대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서술 분석 -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중심으로 -
金 憲 柱 … 93
동학과 의병의 인적계승성은 동학농민혁명참여자백서와 독립유공자공훈록 등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계승보다는 단절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의병의 중심세력이었던 유생들은 대체로 동학에 적대적이었다. 따라서 근현대 사회운동사의 계보도 설정을 동학→의병으로 단순히 연결하는 도식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학과 의병의 계승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반동학과 의병의 계승성을 단정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경상도 북부 지역의 경우 반동학 출신 의병장이 보이지 않으며, 다양한 이유로 동학 출신이 의병에 합류한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역사회에서 각 세력간을 넘나드는 존재들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각 세력들의 교집합이 존재한다는 것과 두 세력의 계승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두 세력의 지향이 계승되는 측면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의 발전적 계승과 단절이라는 이분법은 극복될 필요가 있다. 당대의 현실은 단순히 발전적 단계론에 의한 계승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분절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대립했지만 일부 세력들이 얽혀있었으며, 동시에 그 경계가 고정적이지 않고 가변적이었던 당대의 구체적인 현실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한국 근현대 사회운동사의 계승관계와 역사적 위치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을 것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고등학교 『한국사』 분석 - 독립운동사를 중심으로 -
朴 相 必 … 121
이 논문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고등학교『한국사』중 독립운동사에 대한 서술을 분석한 것이다. 그동안의 교과서 서술 분석은 사실의 오류 여부나 최신 성과의 반영 여부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비록 저자들은 교육과정에 따라 교과서를 서술하긴 하지만, 자신들의 관점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이는 본문 서술 뿐만 아니라 탐구 활동에도 반영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만 분석하여 저자들의 의도를 찾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각 교과서마다 독립운동사를 서술한 저자들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터뷰는 본문 서술과 교육과정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교과서 서술과 탐구 활동의 의도 등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그동안 독립 운동사 서술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수탈과 저항의 이분법적 담론’을 어떻게 벗어나고자 하였는가에 대해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교과서 저자마다 이에 대한 의견이 조금씩 달랐으며, 그에 따라 교과서 서술도 달랐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논문을 통해 교과서 서술에 개입된 저자의 의도를 분석하고자 하였으며, 차후 독립운동사 서술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日本史B』 교과서의 廣開土王碑 관련 서술과 역사인식
鄭 善 花 … 163
이 글은 일본 고등학교 『日本史B』 교과서에 수록된 광개토왕비 관련 서술과 역사인식을 검토한 것이다. 채택률을 기준으로 상위 4위에 해당하는 출판사의 현행 역사교과서를 통해 본문 서술의 특징과 학습자료의 활용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역사교과서에 내재되어 있는 고대 한반도 관련 역사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日本史B』에서 광개토왕비는 七支刀, 宋書 「倭王武의 上表文」, 日本書紀와 함께 일본서기에만 있는 임나일본부설과 삼한정벌론을 되살아나게 하는 학습자료로 활용되고 있었다. 『日本史B』의 본문에 기술된 내용은 대동소이하며, 광개토왕비에 관한 설명은 비문의 일부 내용인 신묘년조 기사를 해석해 놓은 전문 형식이다.
그러나 같은 단원에 광개토왕비와 함께 수록되어 있는 학습자료로 활용된 사료는 일본 역사학계에서 일본서기의 신공황후기의 남한경영론이나 삼한정벌론을 입증하는데 전통적으로 활용해온 자료이다. 현행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도 여전히 동일한 사료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古書인 일본서기가 안고 있는 신뢰성 문제를 당대의 인물이 직접 제작한 1차 사료에 의거하여 史實을 담고 있는 문헌으로 전환시키고자 하였다. 4세기∼6세기의 왜왕권은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강한 국가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영토관, 천하관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역사가에 의한 사료 해석은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사료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역사적 가치는 전혀 설명하지 않고 해당 시기의 정치적 논리를 해명하는 자료로만 활용된다면 역사교과서에서 사료의 역할은 역사인식을 조작하는 도구에 불과하게 된다. 『日本史B』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광개토왕비의 신묘년조 기사 내용과 임나일본부설 관련 내용이 한국사 교과서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한반도의 역사를 일본 제국주의의 잘못된 과거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광개토왕비와 임나일본부설’ 혹은 ‘광개토왕비와 일본서기’의 관계를 폭넓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近代改革期 함경도 儒·鄕 갈등과 養士 機關의 변환
崔 允 … 201
본 논문은 조선말 함경도 향촌 사회의 질서 변동을 배경으로 대한제국기 함경도 내 전통 교육 기관이 신식 학교로 변환되는 과정을 밝힌 글이다.
조선 시기 함경도에 대한 정책 방향은, 邊境에 위치해 있는 지리적 특징에 따라 文보다는 武 위주로 설정되었다. 함경도의 士族은 경제력도 크지 않아 儒學에 매진하여 科擧에 급제하기가 어려웠고, 대신 그들은 향촌 職任을 차지하고자 노력하였다. 조선말 기존 鄕任을 다수 차지하고 있던 鄕人層에 의해 직임 경쟁에서 밀려난 新儒層은, 養士 機關의 설립과 鄕約․鄕禮의 시행을 통해 향촌 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향인은 신유가 세운 양사 기관을 침탈하거나 새로 설립하여 그들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였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와 과거제가 철폐되면서 함경도 향촌 사회에 새로운 사회 변동 세력이 등장하여 향인과 신유의 기득권이 위협받게 되었다. 이에 儒鄕層은 연대하여 중앙에 上疏하고 舊例의 회복을 청하였다. 이후 중앙으로부터 ‘鄕憲’이 내려진 일을 기념하여 鄕飮酒禮를 베풀었다. 그러던 가운데 韓日議定書 체결 등 국난에 봉착하면서, 함경도의 유향층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은 향음주례를 베풀었던 咸鏡道京約所에서 漢北興學會를 설립하고 교사를 양성하는 등 교육의 진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한북흥학회의 교육 지향은 新舊折衷이었다. 한북흥학회 설립 이후 함경도 내 많은 양사 기관은 신구절충에 입각한 교육 기관으로 변환되어갔다. 교육 활동의 주체는 점차 民人 전체로 확대되었고 공공성을 띤 新式 學校의 확산은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양사 기관으로 대표되는 함경도의 전통적인 교육 기반 위에서, 함경도 민인 일반이 國亡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학문을 적극 수용하려 한 결과였다.
해방 직후 간도에서 발행된 『우리國史』의 체재와 한국사 인식 - 桂奉瑀의 『最新東國史』에서 『우리國史』로 -
朴 峻 亨 … 241
이 논문에서는 해방 직후 간도에서 발행된 역사교과서인 『우리국사』를 통해 1910년대 계봉우의 한국사 서술과 인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리국사』는 1945년 11월 간도에서 등사본 3책으로 발행된 역사교과서이다. 이 책은 1913년 계봉우가 간민교육회에서 저술한 『최신동국사』와 내용이 같다. 『우리국사』(『최신동국사』)에서는 한국사를 상고사(부여시대․사국시대), 중고사(남북조시대․고려시대), 근고사(조선시대․대한시대)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한국사 시대구분은 한말~일제초기 다른 역사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계봉우만의 독특한 것이었다.
그는 부여족 중심으로 고조선사 인식체계를 구성하고, 이후 고구려․발해를 중심으로 고대사를 서술하였으며 신라가 아닌 고려에 의한 민족의 통일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박은식·신채호와 같은 당대 민족주의역사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것을 國粹가 멸삭되고 文弱主義로 빠진 것으로 보면서 조선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그는 大韓時代에서 항일의병운동과 근대적인 교육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간도에서 독립운동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근대적인 교육이 중요하였고 그 교육의 핵심을 역사교육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최신동국사』라는 역사교과서를 저술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근대 초기 유럽 자연법의 세계관과 정치사상
金 珉 徹 … 281
자연법학은 근대 초기 유럽의 사상 지형도에서 공화주의와 함께 정치적 세계관을 양분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공화주의 패러다임은 무엇이 자유와 부국강병에 좋고 나쁜지를 따졌으나, 자연법 패러다임은 무엇이 신의 질서 혹은 이성의 질서에 비추어 옳고 그른지를 따졌다. 개인의 삶에서나 사회적ㆍ정치적 전망에서나 두 패러다임은 중요성의 우선순위를 상이하게 설정했다. 공화주의자가 강하고 역동적인 사회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꿈꿨다면, 자연법학자는 법이 지배하는 정의로운 사회에서의 평화로운 삶을 추구했다. 이 같은 자연법 패러다임의 역사적 형상을 포착하려면 그것의 기독교적 뿌리와 도덕적 세계관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계몽의 시대와 프랑스혁명 이후 서구 개혁가들에 의해 전유된 자연권과 민주주의 언어 너머에 있는 근대 초기 자연법학의 토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고는 의무와 권리로써 정의를 확립한다는 자연법학의 기본 전제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서 인간본성론, 사회사상, 정치사상으로 이어지는 논리적 연쇄를 철학적이기보다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서술함으로써 자연법의 세계관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프랑스혁명기 형제애, 코스모폴리타니즘, 전쟁 - 애국파 성직자 클로드 포셰(Claude Fauchet)의 사상을 중심으로 -
梁 希 英 … 313
이 글은 프랑스혁명기 애국파 사제이자 입헌주교이며 입법의회와 국민공회 의원이었던 클로드 포셰의 사상을 통해 프랑스 공화국 표어 ‘자유, 평등, 형제애’의 세 번째 단어 ‘형제애’의 성격과 의미를 살펴본다. 1789년부터 1792년 초까지 가장 인기 있고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였던 포셰에게 형제애는 종교적 소명이자 정치적 구호이며 목표였다. 포셰에게 형제애란 무엇보다 바스티유 함락의 희생자들로 상징되는 형제들, 즉 독재와 특권층에 맞서 죽기까지 저항한 이들의 전우애였다. 따라서 형제애는 자유를 위한 투쟁의 구호이자 형제를 위한 ‘순교’의 호소였다. 그러나 성직자 포셰에게 형제애는 또한 신의 피조물인 모든 인간, 본성상 서로 사랑하는 존재인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하는 보편적 가치이기도 했다. 이 보편적 형제애는 국경을 넘어 전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방법이자 그 귀결이었다. 그러나 이 자유와 평등은 프랑스의 예에서처럼 전투적 형제애의 산물이었으므로 보편적 형제애는 인간을 평등하게 널리 사랑하는 박애나 추상적 인류애는 아니었다. 따라서 포셰에게 신이 주신 선물이자 자유와 평등에 선행하고 이들을 낳을 수 있는 원리로서의 보편적 형제애는 전투적 형제애와 긴밀히 결합되었다. 게다가 이 보편적 형제애는 자유의 맏형이자 인류 해방의 선두로서 프랑스 국민의 강력한 애국심과 공존했다.
그럼에도 전투적 형제애와 보편적 형제애의 결합으로서의 혁명기 형제애와 반혁명으로 규정된 외부 세계에 대한 전쟁선포가 인과적 필연성을 갖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형제애와 전쟁 사이에는 더 복잡하고 현실적인 외인들뿐 아니라 개별 주체의 선택과 의지가 존재했다. 그러나 결국 포셰의 형제애는 주전론의 광풍 앞에서 너무도 쉽사리 공격전쟁의 이데올로기로 변모했다.
批評論文
朝鮮前期 對女眞 貿易
山 本 進(金聖玹 譯) … 347
書 評
마르틴 뤼케·이름가르트 췬도르프(정용숙 역), 『공공역사란 무엇인가』(푸른역사, 2020)
鄭 東 然 … 367
附 錄
2021 글로벌 콜로키움 시리즈 참가기 “『역사가처럼 읽기』를 통해 본 역사적 사고 연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朴 芝 媛, 金 成 子, 朴 善 炅 … 373
彙 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