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비밀번호
 
아이디찾기 비밀번호찾기

:: 담당자 ::

:: E-Mail - histoedu@hanmail.net
:: TEL - 02-880-7708
:: FAX - 02-884-6847




     
 
歷史敎育 151輯 (2019. 9. 30.)
 
관리자
 
100
 
2019-10-18 14:21:20
 

企劃論文: 글로벌 시각에서 본 3·1운동과 그 교육
3·1운동 관련 교과서 서술의 변천 분석   崔 柄 澤 … 1


해방 직후 발행된 교과서에는 3·1 운동 관련 내용이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고, 그 의의에 관한 기술 분량도 적었다. 그런데 1973년부터 적용된 제3차 교육과정 국정 국사 교과서에는 이전과 달리 3·1 운동의 배경과 의의에 관한 서술에서 3·1 운동을 ‘거족적인 운동’이자 ‘민족적 단결’로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운 사건으로 규정했다. 3·1 운동은 ‘거족적인 참여’ 가운데 일어난 의거이며, 이 점은 상당히 의미가 깊지만, 1970~80년대 국정 국사 교과서는 3·1 운동의 배경과 전개, 의의에 관한 교과서 서술 내용이 모두 ‘거족성’이라는 측면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검정 한국근·현대사 과목 도입 이후 일정 부분 완화되었다. 3·1 운동의 배경에 대한 설명 부분에서 1910년대 국내외의 저항 운동 흐름이 설명되기 시작했고, 대동단결선언이나 대한독립선언을 통해 국외의 독립 운동가들이 국민 주권에 바탕을 둔 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다는 서술도 나타났다. 3·1 운동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도 보다 자세하고 사실에 가까운 내용들이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이 묘사되었고, 일제의 무력 대응에 맞서 격렬한 시위가 전개되었다는 사실도 소개되었다. 의의에 관한 부분에서는 이 운동으로 민주 공화제에 기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고 설명하는 내용이 나타났다. 또 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고 평화와 평등을 지향한 운동이라고 소개한 서술도 등장했다.

 

 

일본 역사 교과서의 3·1운동 서술 분석   洪 宗 郁 … 29


일본 교과서의 3·1운동 서술에는 일본 사회 및 학계의 고유한 논점이 존재한다. ‘3·1독립운동’이라는 명칭에는 3·1운동의 성격을 정확하고 엄중하게 받아들이려는 일본 학계의 노력이 담겨 있다. 3·1운동의 발생 원인으로서 내적 계기와 외적 계기의 문제 그리고 3·1운동의 희생자 수를 밝히는 문제는, 식민지 제국을 영위한 일본 근대사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를 놓고 실증과 이념이 부딪히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는 전통적인 좌우 대립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에 대한 시도를 확인된다. 마나비샤 판 중학교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파격을 선보였다. 민족자결주의의 영향, 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의 전국 확산, 운동의 진압과 통치방침의 전환이라는 전형적인 구성을 넘어선 것이다. 아울러 외적 혹은 내적 계기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안이한 인과론을 넘어섰다. 참가자 규모에 대해서도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계통의 통계를 채택하였다. 마나비샤 판 교과서의 실험은 한국의 역사 교과서 서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3·1운동 수업 동향과 전망   鄭 美 欄 … 61 

 

본 논문은 지난 30여 년간의 3·1운동 수업 사례를 통해 3·1운동 수업의 동향과 전망을 살펴본 글이다. 본 연구에서는 역사 수업 관련 단행본, 연구 논문 등을 비롯해 교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수업자료를 검색하여 수업 사례를 수집·활용하였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접할 수 있는 교사 개인이나 기관에서 탑재한 각종 수업 사례와 교육부의 역사교육 우수수업사례 등도 참고하였다.
이 글은 역사 교사들이 자신의 3·1운동 수업 경험과 구상이 지금까지 전개된 3·1운동 수업 흐름의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가늠해보고 좀 더 나은 3·1운동 수업을 만들어가는 데 유용하다.
3·1운동 수업 사례는 3·1운동 수업에 대한 교사들의 관심과 수업 내용 및 방법의 변화 양상에 따라 세 시기로 구분된다. 첫 번째 시기는 1990년대부터 2008년까지 약 20여 년의 기간으로 역사 교사들의 3·1운동 수업 사례가 발표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 시기의 수업 사례들은 이후 3·1운동 수업 사례의 토대가 되었다. 두 번째 시기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의 시기이다. 이전 수업 사례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3·1운동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고 수업 내용, 방법 등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마지막 시기는 2016년 이후부터 현재까지이다. 이 시기에는 3·1운동 수업 사례가 폭발적으로 발표되었고, 수업 내용 및 방법 면에서 눈에 띄게 성장하였다.
3·1운동 수업은 내용과 수업 활동 면에서 크게 다섯 가지 형태가 있었다. 첫째는 3·1운동의 배경, 전개 과정, 의의 등을 살펴보는 설명식 수업이다. 둘째, 3·1운동이 일어났던 상황을 재현하는 수업이다. 셋째, 3·1운동의 취지와 정신을 담은 3·1독립선언서를 비롯한 여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살펴보며 새로운 독립선언서를 작성해보는 수업이다. 넷째,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을 접목하여 3·1운동을 다루는 수업이다. 다섯째, 3·1운동을 둘러싼 논쟁점이나 생각거리를 중심으로 토론하는 수업이다.
지난 30여 년간 3·1운동 수업은 관점과 내용, 방법 등 여러 면에서 변화하였다. 3·1운동 수업은 우리 사회의 3·1운동에 대한 기억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앞으로 3·1운동의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 수업을 전개할 것인가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特別寄稿
구미 한국사 개설서에 나타난 3·1운동상   비온티노 유리안 … 101


본 논문에서는 최근 서구에서 유행하는 연구분야인 동아시아사를 포함하여, 195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까지 구미 한국사 개설서에 나타난 3·1운동 서술에 대해 분석하였다. 구미에서는 3·1운동에 대한 전문 연구가 빈약하기 때문에, 구미 역사가들이 한국사를 파악하고자 하면 이러한 개설서를 통할 수밖에 없고, 게다가 이러한 개설서는 대학 한국사 수업(특히 한국학 과정)에서 교과서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이 쓴 개설서들과 함께, 구미의 연구자가 쓴 한국사 개설서에는 3·1운동에 대한 묘사가 소략하며, 3·1운동이 한국사 및 한국의 사회담론에서 어떠한 의미인지에 대한 서술도 거의 없다. 게다가,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서술이 전혀 없거나, 민중의 역할에 대한 묘사가 없는 책들도 있다. 이는 저자의 3·1운동 인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개설서라는 성격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로 간주된다. 개설서는 제한된 분량 안에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면서도 포괄적으로 서술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미 개설서에 나타나는 3·1운동상은 간략하고 쉽게 지나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처럼 개설서에 나타난 3·1운동의 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 것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은, 결국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이 앞으로 한국사 전체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하는 것이 적합할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論 文
교수요목기 중등 역사 검정 교과서의 발행 상황과 목록화   朴 振 東 … 135

이 연구는 교수요목기에 사용된 중등 역사 검정 교과서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그동안 이 시기 전체 교과서 목록을 모른 채로 개별 교과서 연구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역사 8종, 이웃나라 역사 8종, 먼나라 역사 7종, 우리나라 문화 4종, 인류문화의 발달 3종, 역사부도 3종 등이 발행된 것을 확인하였고, 저자, 출판사, 발행일 정보를 포함한 목록을 작성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역사 검정 교과서들은 교수요목에 준거하여 발행되었으며, 총 33책의 교과서에 관여한 저자는 24명이었다. 2종 이상을 집필한 저자들도 많았다. 최초의 역사 교과서 검정은 1949년에 있었지만 이후에도 검정이 실행되어 일괄검정이 아닌 수시검정이었다. 출판사정과 한국전쟁 때문에 저자나 출판사가 변경되는 경우가 잦은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
일부 보완할 점이 남았으나 이 연구를 통해서 역사교과서 목록의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연구의 결과는 앞으로 개별 역사 교과서 연구를 활성화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書院에 대한 서술 추이와 개선 방향   李 憬 東 … 161


본 연구는 1945년 이후 현재까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수록된 서원 관련 서술의 추이와 문제점에 대해 분석하고 이에 대한 제안을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20세기 중반 한국사 교과서에는 20세기 전반까지 서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부정적인 서술들만이 수록되어 있었다. 서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점차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은 1970년대 이래 서원을 건립한 주체였던 사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에 따른 결과였다. 한국사 연구자들은 조선시대 정치가 정치세력간의 균형과 견제를 목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사림들의 세력 기반이자 지방사회에서 관료를 양성하고 공론을 형성했던 서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면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다만, 기존의 부정적인 시각과 함께 긍정적인 면이 동시에 서술되면서 서원에 대해서는 다소 일관성이 부족한 서술들이 있었다.
21세기에 한국사 교과서는 국정교과서에서 검인정교과서로 전환되었다. 검인정 교과서에서는 16세기 서원의 건립, 17세기-18세기 정치적 사건 및 정치세력과 연관된 서원 연구, 19세기 중앙정부의 서원 폐지 조치 등을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서술하였다. 그러나 검인정 교과서는 2000년대 이후 서원의 연구성과에 대한 수용보다는 이전의 서술체계를 반복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현 시점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원에 대한 보다 심층적이고 종합적인 검토와 이를 기반으로 한 서원에 대한 이해가 교과서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 서원에 대한 서술 방식의 일관성,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원에 대한 가치, 동아시아 유교 교육기관과의 비교, 그리고 현장 학습 등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이는 전통문화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높이고 대한민국의 문화적 자긍심을 가지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현행 <동아시아사> 교과서의 불교사 서술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趙 明 濟 … 195


동아시아사 교과서는 니시지마 사다오가 제시한 ‘동아시아세계론’의 영향을 받았다. ‘동아시아세계의 성립’이라는 대단원에서 동아시아문화권의 4가지 지표인 한자, 율령, 유학과 불교가 성취 기준으로 제시되었다.  이 글은 동아시아사에 불교사가 어떻게 서술되었으며, 문제점과 한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검토하였다.  
첫째, 동아시아에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과 특징에 대한 서술이다. 동아시아 불교는 통속적인 문명 전파론으로 서술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동아시아 불교의 특징이 국가불교라는 설명은 사례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고 국가와 불교의 다양한 관계를 단순화시켰다. 또한 국가불교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으며, 과거 연구의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둘째, 불교가 수용된 이후의 흐름은 선종사를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그러나 선종이 완성된 당(唐) 왕조의 선사상을 잘못 이해하는 등 사실 자체에 오류가 많다. 또한 고려, 일본의 선종사를 서술하면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송 왕조의 선종에 대한 서술이 전혀 없다. 나아가 당, 송 이후 16세기까지 동아시아 불교사의 주요한 흐름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
 셋째, 구법승을 중심으로 한 교류사가 단선적으로 서술되었다. 또한 고대에 편중됨으로써 남송, 몽골 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구법승, 渡來僧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형성된 불교문화사에 대한 이해가 새롭게 서술될 필요가 있다. 한편 대장경을 중심으로 한 문화사에 대한 서술은 학생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소재나 자료 제공에 치우쳐 있다. 또한 고려대장경에 대한 강조에서 드러나듯이 내셔널리즘의 시각이 지나치게 드러난다. 아울러 대장경의 교류를 통한 문화사, 사상사의 흐름에 대한 이해를 보완해서 서술할 필요가 있다.   
 니시지마가 ‘동아시아문화권’의 지표로서 설정한 불교의 역사상과 다른 성격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국불교와 다른 티베트불교는 土蕃뿐만 아니라 몽골제국, 청 왕조까지 이어졌다. 또한 遼, 金 王朝에서 불교가 번성하면서 고려를 경유하여 일본, 송까지 이어진 불교 교류의 네트워크가 주목된다. 따라서 불교는 동아시아문화권의 지표라는 틀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동부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한 범아시아문명으로서 다루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대만, 중국과 동아, 세계: 2018년 대만의 중등학교 역사과정 개혁 분석   金 裕 利 … 223


최근 대만은 ‘12년국민기본교육’의 전면 실시를 결정하고, 2018년 10월 「12년국민기본교육과정강요­사회영역」(108과강)을 반포했다. 이 과강은 민국108학년도(2019년 9월)부터 각 학교급별로 1학년부터 연차적으로 실시될 예정이며, 현재 그에 따른 교과서가 준비 중이다.
이 글에서는 「12년국민기본교육과정강요­사회영역」에 포함된 역사교육과정을 분석했다. 108과강의 역사교육과정은 여러 가지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중학교와 고등학교 필수과목 역사에 대만, ‘중국과 동아’, 세계라는 ‘3개 분역구조’를 채택하고 각 분역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했다. 그 결과 중국사 내용이 전례가 없을 정도로 크게 감축되었는데, 이는 ‘탈중국화’에 기여할 것이 분명하다.
민진당 정권하 교육부는 ‘3개 분역구조’는 ‘탈중국화’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 신세대 공민의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글로벌 사고’를 의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분석결과 교육부의 주장과 달리, 108과강의 역사교육과정은 ‘글로벌 사고’와 ‘3개 분역구조’를 통해 ‘탈중국화’를 의도했으며, 2005년 95잠강에서 나타났던 민진당정권의 ‘탈중국화’ 경향에 박차를 가한 것으로 판단된다.

 

 

정조대 수원 화성 신도시의 위상과 別京 구상   崔 誠 桓 … 263 

 

수원 화성에 대하여 많은 연구들이 축적되었으나, 아직까지 수원 화성의 도시 위상을 명확히 규정할 수는 없었다. 이는 화성 유수부라고 하는 공식 명칭에 얽매어 화성을 4도 유수부 체제의 하나로 설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수원 화성은 상왕이 거주할 별경의 위상으로 구상·건설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별경은 국왕이 거주하는 왕경에 버금가는 도시이다. 수원 화성은 여타의 유수부보다 규모가 장려할 뿐 아니라 당시 조선의 수준에서는 첨단의 정보와 최선의 국력이 투입된 도시였기 때문이다. 이를 한양과 수원의 양경제 구상이라 규정할 수 있다.
정조는 중국의 한족계 주요 왕조들과 조선 태종대 양경제를 모델로 하여 한양-화성의 양경제에 입각하여 화성 신도시를 구상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화성은 유수부보다 한 단계 높은, 상왕이 거주하는 ‘別京’ 곧 華京으로 구상되었다. 정조는 상왕으로 화성에 거주하며 별경을 경영하면서 왕경인 한양에도 때때로 오가고자 하였다. 한양과 화성을 양경제의 차원에서 설명하는 것은 정조가 구현하려 했던 화성의 가치를 개인의 일시적 관심에 머물게 하지 않고 조선 국가 차원으로 영속화할 근거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일제하 日本窒素肥料株式會社의 赴戰江·長津江 개발과 노동자 통제   朴 相 必 … 301 

 

이 논문은 부전강과 장진강 발전소 건설에 대한 일본질소비료회사의 노동자 동원 및 통제에 관한 것이다. 공업의 기초가 되는 발전소 등의 대규모의 사회 간접 자본 시설 건설에는 많은 수의 노동자가 동원되었으며,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희생도 컸다. 조선총독부는 도일 노동자 규제나 ‘단체이민안’ 등을 통해 대규모의 노동력 동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조선총독부라는 통치 권력과 일본질소라는 민간 회사가 결탁하여 일제하 발전소 건설을 주도해 나갔다. 이러한 통치 권력의 비호 아래, 실제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는 청부업자의 노동자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이루어졌다. 회사 및 청부업자와 노동자의 관계는 근대적 자본주의 하의 대등한 관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노동자들은 고된 작업 현장에서 끊임없이 회사 및 청부업자들의 폭력에 노출되었다. 특히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임금을 통제하여 노동자들을 길들여 나갔다. 이와 같은 노동자들의 상황을 일본질소의 부전강 및 장진강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일본질소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발전소를 건설해 나갔으며, 그로 인한 이윤을 고스란히 회사가 독점했음을 알 수 있었다.

 

 

秦·漢 帝國의 기층 國家祭祀 운영 구조   金 龍 澯 … 345 

 

秦·漢 帝國은 社라는 공간과 伏日, 臘日과 같은 시간를 앞세워 民의 다종다양한 신앙과 그 대상인 神을 하나로 묶었다. 이를 통하여 秦·漢 帝國의 국가권력은 중앙에서 기층 사회 조직에 이르는 모든 神과 祭祀의 문제에 개입할 수 있었다. 秦·漢 帝國은 아울러 기층 國家祭祀를 지속시키기 위한 지원 체제도 갖추었다. 각종 國家祭祀에는 犧牲이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古代 中國에서 가축의 사육이 매우 어려웠고, 고기의 소비는 반대로 매우 선호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祭祀의 지속을 위해서는 犧牲의 안정적인 공급은 필수적이었다. 국가권력은 犧牲을 비롯한 祭物의 제공을 위하여 賜律과 臘日 賜與라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였고, 苑, 廐, 倉 등에서 가축을 사육하여 犧牲을 제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이것은 民의 賦와 稅로 운영되는 것으로, 국가권력의 역할이 자원의 효율적인 운영과 분배에 있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그 중심에는 國家祭祀가 있었다.


書 評
김민정·윤종배·정미란·이춘산·송치중·김슬기·이은주, 『역사수업, 함께 궁리하고 더불어 성장하다』 책과함께, 2019   金 成 子 … 389


彙 報

 
이름
비밀번호
   
 

이전글 : 歷史敎育 150輯 (2019. 6. 30.)